<조선말대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다음 뜻에 해당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소젖, 닭알, 사탕가루, 향료 같은 것을 섞어 한데 풀어서 크림 비슷하게 하여 얼음같이 차게 하거나 얼음과자처럼 만든 음식의 하나. 제조기에서 균질화하여 잔이나 종이에 싸거나 종이고뿌에 담아낸다."

22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통일의학포럼 주최로 열린 제4차 심포지엄.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퀴즈를 냈다. “아는 사람은 틀려도 좋으니 대답해달라”며 재차 요청했다. 경품까지 걸었다. 먼저 남한 말로 무엇인지 물었다. 여기저기서 "아이스크림"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번엔 북한 말로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스크림", "에스키모", "얼음보숭이" 등 다양한 답변이 쏟아졌다. 그 중에 정답이 있었다. 권 교수는 “남한 사람들 대부분이 ‘얼음보숭이’라고 답한다”면서 “하지만 북한 사람 백 명에게 물어보면, ‘얼음보숭이’라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스키모’가 정답이다. 지난 15년간 남북언어 통합운동을 하면서 이 문제의 답을 맞춘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놀라워했다.

이어 권 교수는 "‘에스키모’는 원래 상표 이름이지만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됐다"며 “남한에서 보통명사인 ‘봉고’, ‘퐁퐁’, ‘포크레인’이 상표 이름이 된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

▲ 22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통일의학포럼 주최 심포지엄에서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남북한 언어의 차이와 단일화를 위한 연구현황’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통일의학포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을 때, 통독의 의료제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문제와 대책들을 연구하고 파악했다. 제도, 언어 등 남북의 의료 분야가 서로 다르나 교류와 인도적 지원 부분에서도 가장 필요한 부분이 의료부분이다. 그래서 이 포럼을 시작하게 된 것에 긍지를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과 북의 의료가 하나되는 첫걸음’이라는 큰 주제 아래 ‘언어와 의학용어, 의학교육의 통합’이란 소주제를 가지고 개최된 이번 심포지엄은 남북의 의학용어 및 의학교육 통합 문제만이 아니라 남한 내 의학용어 논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논의됐다.

첫 번째 발표는 ‘남북한 언어의 차이와 단일화를 위한 연구현황’이란 주제로 권 교수가 맡았다. 남북언어 통합운동에 깊이 관여해 온 권 교수는 “남북은 원래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규정안에 따라 똑같은 말과 똑같은 표기를 써왔다”면서 “그러다 1945년 남북이 분단되고, 남한은 그걸 그대로 쓰고, 북한은 1966년 이후에 표준어 대신 문화어를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남북 언어가 달라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북의 언어 변천에 대해 권 교수는 “말소리나 문법은 차이는 없지만, 어휘가 대단히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휘 차이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채소’는 북한 말로 ‘남새’, ‘족발’은 북한 말로 ‘발쪽’이라 부른다고 몇가지 예도 덧붙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과거에 남북 언어학자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이들은 통일을 대비해 사전을 만들자고 논의했다. 그 사전이 바로 <겨레말 큰사전>이다. 남북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모여 표기법을 통일하고, 서로 다른 어휘와 뜻풀이를 통일하는 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권 교수는 이 사전의 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했다. 권 교수는 “2005년 국회의원 발의로 <겨레말 큰사전> 관련 법안이 제정됐고, 지금 그 사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일 년에 네 차례씩 만나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22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통일의학포럼 모습ⓒ유코리아뉴스

권 교수는 “사전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배열”이라면서, “모음의 순서를 아는가?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그건 북한식이다. 우리는 ‘아’ 다음 ‘애’, 그 다음 ‘어’와 ‘에’가 온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익숙지 않은 우리 방식을 양보하면서 협상을 해나갔다. 협상은 남북이 주고받는 거다. 어떻게 협의하고 판단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다면, 규정과 달라도 북한에 양보해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남북간 언어 통합 논의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권 교수는 계속해서 “<겨레말 큰사전>은 의학용어와 같은 전문용어는 다루지 않고, 일상용어만 다룬다”면서도 "그것이 의학용어든 일상용어든 국어순화의 대상은 어려운 외래어와 한자어"라고 콕 집어 말했다. “대중이 안 따라주면 그건 버릴 수밖에 없다.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자는 거다. 어렵고 긴 토박이말로 바꾸자는 말은 아니다. 항상 토박이말로 바꾸는 건 오히려 불편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바꾸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남과 북이 언어 순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지혜다."

그러나 남북 의학용어 통합에 앞서, 우리 의학계에서조차 의학용어의 순우리말 순화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는 독자들에게 의학용어를 쉽게 풀어써야 하는지에 대한 직업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의학용어 중 ‘용종’은 ‘물혹’으로, ‘소양증’은 ‘가려움증’으로, ‘천명’은 ‘쌕쌕거림’으로 바꿔 쓰고 있다. ‘골다공증’의 경우, ‘뼈엉성증’이란 순우리말을 선호하고 있다.” 이 기자는 “그러나 실제로 병원과 학회에선 '소양증', '천명'으로 사용하고 있고, 한림원은 '골다공증'처럼 잘 알려진 한자어를 그대로 써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순우리말 선호 쪽이다.

해부학위원회 용어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기석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역시 우리말 순화에 찬성 입장을 표시했다. “해부학용어는 일본 용어라 일본식 한자음을 계속 사용해왔다. 남북은 해방 전 같은 용어로 배우고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말 순화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식민지의 학문 유산을 청산하는 건 우리의 소명이 아닌가 싶다.” 고 교수는 그러면서 “의학용어는 전문가만 쓰는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의료종사자, 환자들도 쓴다고 하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지재근 서울대 명예교수 ⓒ유코리아뉴스

반면, 지제근 서울대 명예교수는 특히 해부학계의 우리말 순화 움직임에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다시 한자어로 회귀한 이유와 관련해 북한의 학술용어 정비위원회 원칙을 언급했다. “말 다듬기를 서두르지 말고, 오랫동안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사업은 전체 인민의 일상적인 언어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만큼 주관적 욕망만 가지고 깜빠이야적(캠페인적)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지 교수는 “우리가 쓰던 용어를 계속 쓰면, 남북한 의학용어의 정의는 같을 것이고, 통일을 위해서도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 교수는 이 기자의 의견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물혹과 용종은 서로 다른 의미이다. 미국의 경우 신문에서도 그 뜻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골다공증의 경우, 우리말로 순화시킨다고 뼈엉성증을 사용하지만, 학술적으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의학교육에 대한 주제발표도 있었다. 발표자로 나선 정은찬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는 남한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의학교육과 의사제도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했다. "북한의 의학교육 과정은 전공과 교육기관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정기 교육과정인 주간 외에도 통신‧야간‧특설 학부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의사제도 역시 큰 차이를 보인다. 남한은 전문의 제도로 운영되는 한편, 북한은 의사급수제도에 기초한다. 의사급수는 6급에서 시작해 최상급 단계는 1급이다. 따라서 북한의 의사들은 급이 굉장히 다양하다."

북한 의학대학의 독특한 입학과정도 소개했다. “입학시험은 3단계로 이뤄진다. 1차는 6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르고, 2차는 면접으로 진행된다. 3차는 체육시험으로 진행되는데, 과목은 오래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수류탄 던지기가 있다. 이 중 수류탄 던지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 22일 국회의원회관 제1회의실에서 열린 통일의학포럼 주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는 모습 ⓒ유코리아뉴스

정 교수의 발표에 대해 이윤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의 자료는 북한 의학교육을 총체적으로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탈북 의사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의 어려움이 그래서 많다는 점도 토로했다. 의사면허시험에 관여해 온 이 교수는 “최근 탈북 의사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의사면허시험 허가 여부를 논의 중에 있다”면서 "북한의 의사자격이 남한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재교육과 시험을 적절하게 적용해서 소규모의 탈북 의사들에게 의사면허 자격을 허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통일을 염두에 두면, 앞으로 남북의 의사제도 통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상현  jacksung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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