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과 분노와 참담을 뒤로하고 3개의 기획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4월 중 탈고를 목표로 책 집필 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월 16일 세월호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와서, 한 달여 동안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 하며 마련한 책 목차와 구상을 모조리 엎어버렸습니다. 아니 쓸어버렸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지난 15년 동안 책, 강연, 뉴스레터 등을 통해서 주장해 왔고, 또 이번 책을 통해서 주장하려고 하던 것을 세월호 참사가 그 수천만 배의 강도로 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책을 통해서 발산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와 어긋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보름 동안은 집필다운 집필을 못하였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컸고, 또 메시지를 세월호 사건을 매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세월호 사건만큼 전국민에게 더 큰 충격을 준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사건의 파장이나 사망자 숫자 때문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 때문입니다.

숱한 불운과 탐욕, 과실, 부정이 사중, 오중, 육중으로 겹쳐져 선박 침몰사고가 났다고 해도, 승무원과 해경이 상식적으로 대처하면 한 명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그야말로 살인을 작심한 듯한 위기 대처로, 승무원들의 지시를 잘 따른 고등학생들과 인솔 교사들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대참사를 만든 수많은 요인들을 살펴보면서 대한민국의 속살과 바닥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휴전선과 군대, 원자력발전소, 에너지 비축 기지, 지하철, 선박, 항공기, 대형빌딩, 경찰, 소방 시스템 등.

여태까지 세월호 사건만큼 대한민국 언론들의 취재력, 기획탐사력이 집중된 사건은 없었던 같습니다. 이른바 친여 매체는 대충 덮거나 봐주려 하고, 친야 매체는 집요하게 파헤치는 식이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날카롭고 집요하게 파헤쳤습니다. 관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600년 한반도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관료, 공무원 때리기는 오히려 중앙, 조선, 동아가 선도합니다. 다만 박근혜 때리기에서 신랄함과 집요함의 차이가 좀 있을 뿐입니다.

지난 2주 동안 연구소 뉴스레터를 날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많고 뿌리 깊은 모순이 결집, 폭발하였고, 또 거대한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보니 세월호 사건의 엄청난 무게를 글이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뉴스레터는 단순 폭로 기사가 아니라, 대체로 심층적인 진단과 대안위주다 보니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난 2주간 글 자체를 안 쓴 것은 아닙니다. 페이스 북에는 하루 1~2개의 중후한 글을 올렸습니다. 연구소에서도 통한과 성찰의 토론을 했습니다. 이전에 공지한 대로 3월 24일(월)부터 지난 4월 28일까지 6번에 걸쳐 월요일 저녁은 가슴 답답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회를 했습니다.

지난 4월 28일 저녁에는 이기정 선생('학교개조론' '교육 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 등 저자), 전대원 선생('나의 권리를 말한다' '고등어 사전' 등 저자)과 제가 ‘세월호 관련’ 발제를 했고, 12~13명이 모여서 토론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참여하는 독서모임 등에서도 세월호는 핵심 주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레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언론이 진실을 파헤치고, 책임을 묻는다면, 연구소는 언론의 탐사, 분석, 보도를 바탕으로, 더 심층적인 진단과 대안을 내놔야 합니다. 언론이나 여론이 놓친 것도 짚어야 합니다. 진실과 분노와 성찰을 글로, 책으로, 정책으로, 운동으로, 아카데미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셨겠지만 저 역시, 대한민국과 세월호가 너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과거에도 대한민국을 배로, 정치와 리더십을 선장으로 비유하는 비유들이 넘쳐났는데, 세월호를 계기로 아마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모순부조리를 말할 때, 세월호 참사는 너무 처절하고 적절한 비유(메타포)로 사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세월호 침몰은 대한민국 침몰과 닮아 있다. 이제 남은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러스트 나하나

우선 로로선(Ro-ro ship, Roll-on/roll-off, RO-RO선) 구조부터가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사람 운송(안전)보다는 화물 운송에 초점을 맞춘 화물선인데, 겉은 번듯한 여객선입니다. 인천-제주 430km의 장거리 항해를 로로선이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 요인입니다. 세월호의 경우 승객 중량 다 합쳐도 30톤(60kg*500명) 정도인데, 화물 적재량은 1200톤 가량 됐습니다. 중장비 4대, 화물차 57대, 승용차 124대 도합 185대를 실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로로선을 "화물을 적재한 트럭이나 트레일러 또는 일반 차량을 수송하는 화물선으로, 별도의 크레인을 이용하지 않고 차량들이 자가 동력으로 직접 승•하선할 수 있는 선박"으로 정의합니다.

배 안에 거대한 공간이 있고, 많이 나가면 50톤씩 나가는 거대한 화물차를 실으니 어찌 취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겉만 보면 도저히 침몰할 것 같지가 않은 멋진 여객선입니다. 수심 몇 십 미터 수준의 연안에서는 설사 가라앉아도 4층, 5층에 있으면 물이 발치에도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누가 이 거대한 배가 뒤집히리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탈출에 과감하지 않았던 이유도, 선장 및 승무원의 양식을 믿었고, 헬리콥터 소리를 낸 구조대의 역량과 책임을 믿었고, 거대한 배 자체를 너무 믿어서이겠지요.

로로선의 구조적 취약성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과 흡사합니다. 바로 이 점이 깊은 우려와 시름을 자아내게 합니다.

삼성과 현대기아차 등 몇몇 기업(집단)과 산업이나 10대 수출품목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 자체가 로로선을 닮았습니다. 좁은 국토에 밀집된 원자력 발전소도, 일촉촉발의 정전체제와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안에 서울·수도권의 엄청난 인구·시설도 닮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식민통치-정전체제-개발독재가 남긴 거대한 역사적 유산도 로로선을 연상케 합니다. 이 역시 민주주의와 시민적 덕성(정직, 규칙 준수) 등을 한방에 훅 보내버릴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이든, 권력이든, 나와바리를 보장해 주는 규제든, 학위·학벌이든, 국가고시를 통해 획득한 자격증이든, 노조가 휘두르는 단결력이든 아무튼 한칼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높은 권리, 이익을 누리면서, 이들의 부담을 오롯이 전가 받은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의 뒤틀린 심성과 피폐한 정신도 로로선의 구조적 취약성과 너무 닮았습니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불거져나 오는 비정규직 시비의 본질도 고용형태(임시직, 계약직) 자체가 아니라, 하는 일에 비해 승무원들의 처우가 너무 낮아서, 이로 인해 워크맨십 등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제가 비정규직/규제완화/신자유주의 시비를 격하게 비판한 것은, 이 분들이 비정규직 양산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대참사와 관련된 인과관계와 잘 맞지 않고, 또 원인을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만들어 제대로 된 단죄와 개혁을 가로 막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기 때문 입니다. '돈' 타령, '탐욕'타령, "인간 존엄성" 타령, 모든 것을 박근혜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태도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아무튼 세월호의 고급 여객선 같은 겉모습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스마트폰과 자동차와 한류 상품과 몇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닮았습니다. 엄청난 불안정, 취약성, 야만의 역사를 덮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회, 정당, 오피니언 리더 등은 딴 데(사적 탐욕에) 정신이 팔려, 위기를 방어하지도, 감지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한 이준석 등 승무원, 청해진해운, 해운조합, 선급협회, 해경, 해수부와 흡사합니다.

선박여행을 결정한 단원고 교감과 교사들이 배의 겉모습만 보고, 이 배가 하드웨어 측면이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얼마나 불안하고, 후진적이고, 야만적인지 알지 못하였던 것처럼, 우리 국민들 역시 세월호 참사 전에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불안하고, 후진적이고, 야만적인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1980년 광주항쟁은 (적어도 재야 운동권에서는) 혁명을 예사롭지 않게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김대중 정부와 양식있는 국민들에게) 제2건국을 예사롭지 않게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세월호는, 사상과 이념, 지역과 세대를 초월하여, 수백 년 묶은 작폐를 뒤집어엎는 혁명과 재건축 수준의 국가 시스템 리모델링을 얘기하도록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월호 선실 안에서 어이없이 스러져간 꽃다운 영령들에게 약간은 덜 미안할 듯 싶습니다.

3개의 기획을 했습니다.

첫째는 3회에 걸친 온빛 아카데미 입니다.

둘째는 세미나 입니다. 5월 15일 오후 4시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월요 토론에 모였던 단체 및 개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주제로 연합 세미나를 하기로 했습니다.

셋째는 성찰 집담회 입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산다고 살았지만,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대한민국을 만든 죄를 통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30여년에 걸친 운동과 삶을 돌아보는 집담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10명이 될지 20명이 될지 모르지만,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삶과 운동을 성찰하고, 함께 토론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연구소(사상/정책 혁신) 운동을 포함하여, 많은 인사들이 청춘을 바친 노조운동, 농민운동, 언론 운동, 협동조합운동, 정치혁신 운동 등을 성찰해 보려 합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이 모여서, 아직 남은 공심과 열정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토론해 보려고 합니다.

온빛 아카데미 기획 안을 소개합니다.

오후 7시~8:30분에 걸쳐서, 제가 강의합니다. 유료 강좌로 하려고 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6월부터는 8개의 강좌를 하려고 합니다. 제 강좌 외에도 다른 분들의 강좌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과 혁명을 묻는다>

1강(5.13) 세월호에서 우리는 뭘 배웠나?
세월호 사태 간략한 백서/ 무책임과 무능의 뿌리/ 통곡과 분노가 놓친 것들 /지독한 착각과 단견들/ 전화위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2강(5.20) 대한’民’국인가? 대한’官’국인가?
그레고리 핸더슨의 통찰/ 법치국가인가 형치국가인가 / 관주주의인가 민주주의인가/ 박근혜정부 규제개혁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시대의 국가관을 묻는다

3강(5.27) 한국 정치 희망은 있는가?
새정치, 신당, 뉴노선이 걸레가 되는 이유/ 지방 자치(정치)에는 희망이 있는가 / 세월호와 지방선거 이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우리시대 정치 혁명의 조건

김대호/ (사)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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