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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신 일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12)

압록강을 넘어 자그마한 야산에 올랐다. 그리고 북한 땅에서 바라보았던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우선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신발을 좀 말려야 했고 아침식사도 해야했다. 그러나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았다.

우선 새로운 지역에 가면 동서남북 방위판정을 하는 것이 군인에게는 상식인데, 나는 그보다 먼저 마을에서 벗어나 있는 외딴 집에 찾아가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날이 밝아오자 외딴 곳에 있는 집을 찾아나섰다. 그 집 앞마당 옆에는 위성 안테나가 있었고 집 옆에는 마구간과 마차가 있었다.

연이어 짖어대는 개는 얼마나 크던지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 먹을 듯이 짖어댔다. 개가 그렇게 짖으면 주인이 밖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북한 땅에서 중국 땅을 볼 때는 중국에 있는 집들이 아담하고 깨끗하게 보였는데 가까이 가 보니 정리 정돈도 안되어 있고 참으로 집안 관리가 소홀했다.

하는수 없이 마당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나올 때까지 두드릴 각오를 가지고 노크를 했는데 한참만에야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나왔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나는 나대로 그 여성은 여성대로 서로 마주 보기는 하였으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무작정 이야기를 했다.

"조선에서 왔습니다. 신발이 젖어서 그런데 안에 들어가 말릴 수 있을까요?"

그 여성은 내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조선에서 왔다는 것만은 이해한 듯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녀는 "뿌동, 뿌동"이라고 말하면서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다.

중국 사람들의 인정이 이런가? 나에게 있어서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아주 어릴 때 우리 마을 주변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군인들에 대한 생각이 전부였다. 그 집에서 쫓겨나다시피하여 다시 마을을 내려다보던 야산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내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날이 밝아 조깅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붐비고 있었다. 그 마을은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운봉발전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사는 마을인데 북한으로 말하면 노동자구 쯤 된다고 생각했다.

그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을 한가운데 보일러(큰 보일러 기계를 설치한 건물)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막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곳에 가면 신발을 말릴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을 중앙에 있는 보일러 건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주저없이 걸어갔다. 조깅하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아주 복잡했다. 분명 나를 보면 이상할 것이고 그 이상한 것을 좀 더 생각해 보면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누구하나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를 주의깊게 바라보는 사람도 없었다.

극진한 식사대접

보일러 건물 앞에 도착하여 보니 철문이 닫혀 있었다. 두손으로 철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문이 열리는 순간 보일러 안을 들여다보니 연탄을 보일러 화구로 투입하는 사람, 보일러 화구의 문을 열고 슬라구(증기 혹은 온수를 생산하기 위해 연소시킨 연탄재)를 끌어내는 사람 등 열이 이글이글 하는 화구 앞에서 중국의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그들은 일손을 잠시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뭐라고 해야 하겠기에 "조선, 조선!" 이라고 소리쳤다. 내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그들은 손에 잡고 있던 도구들을 버리고 나에게로 바삐 걸어오면서 "조센,조센"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나를 이끌어 휴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서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의사소통이 안 되니 물어보지를 못했고, 그 와중에도 몇 마디 물어 보았으나 역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래 보일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휴게실에서 직접 밥도 하고 찬도 만든다. 나는 아침밥을 먹는 것도 중요했지만 제일 급한 것이 젖은 신발과 양말을 말리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양말과 신발을 벗어 휴게실 라디에이터에 올려놓고 말리기 시작했다. 중국 노동자들 가운데 한국말을 겨우 조금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가 상강 마을로 강을 넘어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느덧 아침식사 준비가 다 되었고, 아침 8시 쯤 되니 낮에 일을 해야 할 새로운 교대자들이 나왔다. 휴게실은 밤에 일한 사람들과 낮에 일을 해야 할 사람들간에 인계인수가 진행되며 한쪽으로는 밥상을 차리는 등 복잡하였다. 밥상을 보니 대단했다. 여러가지 반찬과 특히 눈에 띈 것은 고기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피곤하니 좀 자야겠다고 이야기하고 긴 의자에 누었다. 밤을 새워 그랬는지, 아침밥을 먹어서 그랬는지 걷잡을 수 없이 잠이 몰려 왔고 정신없이 잠을 잤다.

자다가 일어나니 오전 11시,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은 밤일을 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나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가 잠을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여기는 변방인데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떠나려 한다고 말하고 깨끗이 마른 양말과 신발을 신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때 중국 노동자 한사람이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그 노동자가 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싸가지고 왔는데 풀어보니 빵이었다. 그것을 받아 작전 가방에 꾹꾹 눌러 집어넣고 나니 앞으로 수만리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먹을 것이 있으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거기를 떠났다. 지금도 나는 그들이 그리워질 때가 많다. 내가 제일 힘들었을 때 나를 도와준 외국인들이었다. 언젠가 중국을 찾을 기회가 있으면 꼭 한 번 그들을 찾아가 보고 싶다.

원래 이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사랑이 많아서 나를 그토록 친절하게 맞아 주었을까. 그 중에는 중국 공안에 신고하면 포상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후에 대한민국으로 와서 알게 되었지만 그 운봉발전소 노동자들이 사는 중국에 있는 마을은 변방이고 발전소가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일체 외부의 사람들은 들어갈 수도 없는 특수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친절하게 대접해주었다.

누가 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이 많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나를 흔쾌하게 맞아 주도록 만들어 놓았겠는가. 나는 당연히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믿는다.

 산속에서 만난 중국인

대한민국에 와서야 내가 대접을 받은 마을의 이름이 청하 마을임을 알았다. 그 청하 마을 보일러 건물에서 내가 떠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경이었다. 한국말을 조금 하는 노동자와 나의 작전 가방에 빵을 가득 담아준 노동자와 작별 인사를 하였다. 청하 마을을 떠나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힘이 들지만 안전을 위해 산을 타고 산악행군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무조건 산으로 올라갔다. 비록 내 어깨에 계급장은 없었지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신발과 옷은 북한 것이다. 바지는 군복바지를 그냥 입었고 상의 하나는 일상복으로 입었다. 누가 봐도 이상했을 것이고 또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산으로 올라가기는 했지만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음속의 목표는 길림성 통화시였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랐다.

산에 올라 동서남북 방위판정부터 했다. 내 손에는 나침반도 없고 지도도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방위를 판정한 다음 무조건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중국의 산은 북한에 있는 산과 달라서 제법 나무도 많았다.  산에는 사람이 다닌 길도 있었지만 양떼들이 다닌 길이 많았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의 기본 운송 수단인 마차들이 다닐 수 있는 길들이 있었다. 분명 이 방향으로 가면 통화라는 도시로 갈 것이다. 며칠을 걸려도 좋다. 몇달을 걸려도 좋다. 가방에 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쨌든 마음이 든든하였다. 행군속도도 빨리 하지 않았다. 장거리 행군을 해야하는 만큼 처음부터 체력을 잘 보존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지 두세 개를 넘어가고 또 가기만을 계속했다. 한참 가는데 중국인 한 명이 산에서 한 나무를 싣고 있었다. 그는 인적도 없는 산에서 중국인도 아닌 사람이 불쑥 나타나자 좀 놀라는 기색이었다. 나 또한 놀랐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북한에서는 간첩들이 침투하여 이런 외딴 곳에 나타나면 무조건 사살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임을 떠올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허리춤에 북한군 단도 하나를 보이지 않게 휴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점점 그 사람과 가까워졌다. 그 사람은 일손을 멈추고 마차 꼭대기에서 나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나도 그 사람을 감시했다. 얼굴을 보니 도저히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판단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계속 자세히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수를 쓰는 것이 이기는 법이다. 수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고, 그 다음에 조금 이상한 눈치가 보이면 또 다른 대책을 세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을 향해 크게 "조선, 조선!" 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그제야 그 사람은 내가 북한에서 넘어온 것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머리를 끄덕거리며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안전을 확인한 후, 나는 계속 가던 길을 갔다.

한참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그 지역을 벗어나려고 행군속도를 다그쳤다. 가만히 마차에 서서 내가 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국인이 갑자기 웨, 웨 소리를 질렀다. 뒤을 돌아보니 그 사람은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은 아니라고 표시했다. 내가 가던 방향에서 좌측으로 가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 아무 생각없이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가던 길에서 좌측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멀리서나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다. 만일 그때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북한으로 갔을 것이다.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은 멀리 돌아 북한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사무엘상 20장 42절 말씀이 생각난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너와 나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이 네 자손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부천 창조교회 담임목사)

심주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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