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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안들 북조선 사람 잡으려고 난리야 난리”오영필감독의 서쪽나라(5) - 그날의. 이름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난 그날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이 오늘이 되는 날 영혼의 밑바닥에 침잠되었던 신음소리가 한 조각의 바람조차 사랑하겠다는 힘찬 고백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날의 이름을 ‘자유’라 명명하겠습니다.



여홍이 가르쳐 준 중국어 단어와 문장 들을 외웠다. 리엔(얼굴), 시에(신발), 야츠(이빨), 수이조(잠을 자다), 조루(걷다), 진 티엔(오늘), 씨엔 짜이 셤머 쓰지엔(지금 몇 시입니까). 이렇게 배우는 중국어 학습은 닫힌 공간에서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부지런히 배운 단어를 조합하여 여홍과 서툰 대화를 나누었다.

“니더 밍즈 쓰 셤머(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워더 밍즈 쓰 여홍(나의 이름은 여홍입니다).”
“져 쓰 셤머(이것은 무엇입니까)?”
“져 쓰 추왕후(이것은 창문입니다).”
“니 시환 티유머(당신은 운동을 좋아하십니까)?”
“쓰더, 워 시환(예, 운동을 좋아합니다).”


38일 만에 담당 공안이 왔다. 그는 준비해 온 문서를 읽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4조 4항에 의거하여 외국인의 도주를 협조한 혐의로 당신은 중앙 인민 상무위원회의 엄격한 심사에 의해 중국 법을 위반했음을 알려 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시오.”
“국경선을 넘어 도주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중국 법을 위반했다. 그래서 정재영과 당신에게 5만 위안(당시 환율로 800만 원)의 벌금형을 부과한다.”
“5만 위안이라고요? 그러면 강 사장은 어떻게 됩니까?”
“강 사장과 김 부장은 혐의가 무거워 재판이 불가피하다.”

벌금만 내면 곧 석방된다는 생각에 그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 모든 혐의 사실을 인정한다는 행정처벌 2조 2항에 의거한 서류에 인장을 찍었다. 인장을 찍으면서 담당 공안의 이름을 슬쩍 엿보았다. 먼 이곳 중국 감옥에서 날 심문하던 그의 이름은 ‘통링’이었다. 서류에 사인을 하자 지금이라도 당장 돈만 내면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흘렸다. 그러나 5만 위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재영 씨는 그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돈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강 사장이 선교회 간사와 통화하다 어머니께서 교회 분들과 이미 돈을 마련해 놓았다는 사실을 내게 전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되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토록 아득하게만 느꼈던 터널의 끝이 이제는 점점 시야에 들어오는 듯했다.

석방 소식을 전해들은 왕징후이가 이별을 준비하려는 듯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원래 간수가 아니라 모범수였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는 원래 중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사였는데 그의 반 학생이 공금을 횡령해 도망가는 바람에 자신이 책임을 지고 변상해야 했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에 벌금 5만 위안을 내지 못해 결국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에게 편지를 썼다.

후용이 석방되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신발을 깨끗이 닦아 놓고 후용은 자신의 해방을 기다렸다. 점심은 쌀밥에 두부볶음과 당면이 들어간 배추무침이 나왔다. 식사 도중 간수가 후용을 급하게 불렀다. 그는 민첩하게 소지품을 정리했다. 남은 사람들은 후용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 주었다. 두 시간 후 간수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동안 수천 번의 예행연습을 했음에도 문 밖으로 나오는 마음은 폭풍 속의 바다처럼 출렁였다.

그날에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난 그날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은 영혼의 밑바닥에 침잠되었던 신음 소리가
한 조각의 바람조차 사랑하겠다는 힘찬 고백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날은 이전에 소유했던 것을 원상으로 되돌려 받을 뿐 아니라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들을
보너스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늘이 되는 날
그날의 이름을 ‘자유’라 명명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상실을 먹고 자랐기에
그날은 힘들었던 과거의 청산이 아닌
생명의 씨앗 됨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날에 나의 탄생에 감사하고
존재한다는 것의 경이로움에 고개 숙이고 싶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난 그날이 오늘이 될 수 있음을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습니다.

나와 재영씨는 만료된 비자를 재발급 받기 위해 공무원들의 숙소인 초대소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자유인의 신분으로 감격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첫날이 밝았다. 담당 공안으로부터 압수한 소지품을 돌려주겠다는 전화가 왔다. 변방 부대 사무실은 초대소 바로 옆 건물에 있었다. 그가 캐비닛에서 소지품들을 모두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검은색 가방, 지갑, 비행기 티켓을 찾았다. 소지품을 정리하고 외출을 했다. 공중전화는 쉽게 찾았지만 사용법을 알지 못해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PC방을 발견했다. 서둘러 메일을 열어보았다. 확인하지 않은 수백 통의 메일이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한글이 깨져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게시판에 석방 소식을 영어로 올렸다.

다음 날 담당 공안이 우리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초대소에 찾아왔다. 그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재영 씨에게 가족이 북송되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재영 씨가 말끝을 흐리자 당황한 듯 화제를 바꾸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대만, 싱가포르, 홍콩처럼 부유한 나라로 알고 있어요. 영필 씨는 이곳에 있는 동안 중국인에 대해 무엇을 느꼈나요?”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엔 일반 시민들은 사회주의 의식이 약한 것 같던데요.”
“위로는 사회주의가 지배하고 아래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죠. 나는 사회주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올시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입고 있는 자신의 제복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중국의 근· 현대사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쑨원, 마오쩌둥, 덩샤오핑을 언급했다. 또한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깊은 나라로 공자, 노자, 맹자, 순자 등의 뛰어난 인물을 배출했음도 새삼 강조했다. 그에게 다소 민감한 질문을 했다.

“대만이 중국의 영토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독립된 국가라고 생각하세요?”

많은 중국인들은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중국이 대만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홍콩처럼 그 나름의 시스템을 인정하고 중국 본토가 더 많은 개방을 해서 힘으로가 아닌 시스템으로 대만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그가 나에게도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당신이 중국에서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죄는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죄와 시대가 변하면 변하는 죄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자는 도덕적으로 잘못을 범한 죄들이며 후자는 당시 특별한 정치적인 환경과 관련한 것들이죠. 나의 행동은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되거나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이 개선된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죠. 그때가 되면 나의 행동에 대한 평가도 많이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솔직히 나의 행동에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범죄자로 보진 않아요. 단지 작은 잘못을 했을 뿐이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적으로 만났던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석방된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재영 씨가 전화 카드를 구입하러 나갔다가 ‘조선반점’이라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가게 주인은 하이라얼 간수소로 이송되었을 당시 도움을 주었던 분의 친형이었다. 그의 동생은 여행사를 운영하는데 현재는 베이징으로 출장 가 있었다.

며칠 후 초대소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는 내가 언제 석방되었고 현재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검사라고 했다. 검사가 왜 나를 찾지? 재영 씨의 의견을 물었다. 재영 씨는 한번 만나 보자고 했다. 저녁 무렵, 숙소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노크 소리에 이중 열쇠를 풀었다. 캐주얼 차림의 두 청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마른 체격에 뿔테 안경을 쓴 친구는 제이슨, 체격이 좋아 보이는 옆 친구는 한잼핑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시내에 있는 고급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양 요리를 시키고 함께 건배를 했다. 몸에 술과 음식이 들어가고 제이슨의 멋들어진 노래를 듣는 동안 긴장이 풀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제이슨이 재영 씨 가족이 아직 북송되지 않고 중국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술이 확 깼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탈북자들이 공안에 붙잡히면 3개월 내에 북한으로 송환된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중국에 왔다면 정상이 참작되어 북한의 노동교화소에서 2~3개월 있다가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거나 한국행을 준비하다가 체포되는 경우는 반체제 인물로 낙인찍혀 오랜 기간 심한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재영 씨는 제이슨의 말이 반가우면서도 쉽게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화는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그럴수록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아리송한 기분에 빠졌다. 적으로 규정한 이들이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베이징에서 학교 다닐 때 룸메이트 중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어. 방학 때는 그 친구가 사는 부산에도 가봤는데 정말 좋더라. 그때부터 한국을 좋아하게 됐지. 그래서 한국 음식이나 한국의 문화를 아주 좋아해.”

궁금했던 의문들이 하나씩 풀렸다.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토록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오전 9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조선반점에 갔다. 너무 부지런을 떤 탓일까? 영업시간은 10시부터였다. 종업원은 음식을 빨리 준비하겠노라고 했다. 동생 분이 가게로 들어왔다. 감옥에서 종이와 펜을 얻는데 큰 도움을 주신 분이었다. 이름은 조형문, 나이는 35세로, 사근사근한 말투에서 엘리트적인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그의 아내는 지금 서울대학교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자신도 한국에서 네이멍구 자치구 지역의 방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대화 중간에 40대 중반의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석방되기 직전 조사를 받을 때 통역을 해주신 분이었다. 네이멍구 자치구 홀름빌 축목국의 비서로, 가축에 관해서는 전문가로 알려진 중앙 고급관리였다. 그에게 이번 사건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중국 법에 의하면 국경선을 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조직을 만들거나 자금을 대는 사람은 징역 7년 이상의 중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강 사장과 김 부장은 사건의 핵심 인물로 형사 처분이 불가피하고, 나와 재영 씨는 단순가담자로 전국인민대표위원회 상무회의의 의결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고 석방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외국인은 구류 기간인 30일 내에 재판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나의 주장에, 그는 중국 법에 의하면 합법적인 조사 기간이 60일인데 그것을 두 번 연장할 수 있어 결국 6개월을 구류할 수 있다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외국인의 구류 기간이 6개월이라니. 더구나 이 사건은 형사, 검찰, 네이멍구 자치구의 심사 과정을 거쳐 처리되므로 두 달은 더 걸린다고 했다.

“그럼 강 사장에겐 어떤 처벌이 예상되나요?”
“최소 1년에서 3년의 실형이 불가피할 거요.”

더 이상 말할 기력도 없는 내게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어제 하이라얼의 버스 정류장에서 8명이 또 잡혔는데, 중국에서 3년 동안 숨어 지낸 가족이 포함되었던 거야. 버스표를 검사하는데 말을 시켜도 도무지 말을 해야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 그래서 수상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니 신분증이 있나? 어제 그 일 때문에 공안국에서 통역해 주다 왔는데 아휴, 탈북자들 골치 아파. 요즘 공안들 북조선 사람 잡으려고 난리야 난리.”

감옥을 나와서 처음 맞는 주말이다. 초병들을 따라가 여권을 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자유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음 날 바로 떠나기로 했으나 재영 씨는 가족의 석방을 위해 이곳에 좀더 남아 있고 싶어 했다. 그는 중국인 친구를 통해 돈으로 가족을 빼내는 방법과 제이슨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둘 다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쪽을 선택하는 게 나을 거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가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어찌 합리적인 태도로만 처리할 수 있겠는가?

조선반점에 들러 여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장님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시며 양고기를 대접해 주셨다. 동생 조형문 씨도 소식을 듣고 급히 식당으로 왔다. 식사 중에도 강 사장의 석방 문제와 재영 씨의 가족 문제에 대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에게 강 사장의 변호사 선임에 대한 일을 신신당부했다. 조선반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제이슨의 집으로 향했다. 중국에서는 직업별로 주택이 모여 있는데 그가 사는 단지에는 검찰 관계자들이 많이 거주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놀랐다. 가구들은 모두 핀란드산이었다. 그의 사회적 신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었다. 그는 자기 여동생을 소개해 주었다. 이름은 자예로, 학교에서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무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제이슨 못지않게 그녀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화장대 위에 한국 배우들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다.

새벽 1시. 제이슨과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집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었다.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었다. 그는 수사 자료를 넘겨받으면서 내 사진을 보았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큰돈을 벌려고 이런 일들을 하지. 처음엔 너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공안의 심문 조서에 일관되게 이 일을 한 이유가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적혀 있는 거야.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함이 생기더라고. 너와 강 사장의 답변 모두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이 일을 한 거라고 적혀 있었어. 내 상식으로는 아무리 종교가 중요해도 자신의 안전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돕는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 그래서 떠나기 전 너를 한번 만나고 싶었어. 그래서 초대소에 있는 너에게 전화한 거야.”

그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그 친구야말로 깨끗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초대소에 머물고 있는 나를 찾아오게 했으며, 내가 그의 집에 이렇게 찾아가게 만들었다. 그와의 만남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 전에는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약속까지 했다. 내가 촬영한 테이프를 사건이 종결되고 1년 후에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하자 그는 ‘우정’이란 말로 이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무 조건 없이 상대를 위해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선한 양심, 그것이 그가 말하는 우정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허락한 아름다운 성품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자예가 아침 식사로 신선한 우유 한 잔과 토스트를 준비해 주었다. 기차표를 사기 위해 그와 함께 하이라얼 역으로 갔다. 그는 며칠 더 있다 가면 안 되겠냐고 몇 번을 물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차표를 끊고 가족들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했다. 작은 상점들이 즐비한 시장을 거닐었다. 장신구 가게에서 어머니께 드릴 반지를 샀다.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영 씨에게 전화가 왔다. 감옥에서 알게 된 중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가족을 만나려고 한다고 했다. 부디 그의 소원대로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재영 씨의 기차표를 취소하러 다시 역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자예가 부탁한 식료품을 샀다. 그녀가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식탁 가득히 고기와 야채 요리들이 즐비하게 차려졌다. 잠시 스쳐가는 손님을 위해 이렇게 극진히 대해 준 이들의 마음 씀씀이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영필아, 너를 위해 만찬을 준비했으니 충분히 즐기려무나. 그동안 추운 곳에서 고생 많았지?’ 마음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제이슨과 자예야말로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찬을 끝내고 제이슨이 이런 말을 했다.
“어렸을 때 사촌 동생이 집에 놀러왔었거든. 그런데 그 동생이 떠나는 게 너무 아쉬워 몇 날 며칠 심하게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어. 그런데 그 느낌이 15년 만에 되살아나는 것 같아. 나도 이런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없어. 그래서 참 힘들어.”
먼 이국땅에서 친구의 진심어린 환대를 받을 수 있다니…….

떠나는 날 저녁, 역에 도착하자마자 플랫폼을 향해 뛰었다. 열차를 타기 직전 그가 카메라를 꺼냈다. 역무원에게 부탁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기차에 몸을 싣고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중국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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