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뉴코리아에서 주관한 ‘러시아 연해주 평화통일 역사 탐방’을 7월 25일(월)부터 30일(토)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이번 탐방에는 여러 교회에서 모인 20여 명의 교인들이 함께하였고 이만열 장로님(전 국사편찬위원장)이 단장을 맡아 주요 탐방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알려 주셨다.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연해주 땅에서 펼친 독립운동을 좀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었고,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새롭게 알아갈 수 있었다. 이번 연해주를 탐방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3회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7월 25일(월) - 첫째 날
인천공항에서 오후 4시 30분 비행기로 2시간여를 날아 러시아 땅 연해주(沿海州)의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하였다. 연해주 탐방의 첫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약 200㎞ 떨어진 크라스키노였다. 우리는 버스로 대략 3시간 30분을 달려 자정이 다 되어서야 크라스키노에 있는 뉴코리아 연추 센터에 도착하였다. 뉴코리아에서 2015년 6월에 설립한 연추 센터는 현재 한 선교사님이 거주하면서 통일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센터에서 간단히 기도를 하고 각자 숙소로 흩어져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7월 26일(화) - 둘째 날

오늘은 크라스키노의 주요 지역을 둘러보는 날이다. 고려인들에게는 ‘연추’라고 불렸던 크라스키노는 북한과 지척에 있는 곳으로 현재 인구 4,00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는 곳이다. 먼저 크라스키노는 발해의 유적이 일부 남아 있어 발해 역사 연구를 위해 중요한 장소이다. 또한 우리 조상이 조선의 척박한 삶과 가렴주구를 피해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올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 크라스키노 지역이었다. 무엇보다 크라스키노는 구한말 의병 운동의 중심지였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을 준비할 때 단지동맹을 한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 크라스키노역 ⓒ강보선

오전 7시에 예배를 드린 후 아침을 간단히 먹고 센터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크라스키노 철도역을 먼저 방문하였다.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2층짜리 철도 역사에는 인적이 드물었는데, 이곳을 떠난 기차는 하산역을 거쳐 두만강 철교를 지나 북한의 함경북도로 들어간다고 한다. 북한과 직접 연결되는 철로를 바라보면서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속히 오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 안중근 의사의 단지가 새겨진 단지동맹비 ⓒ강보선

곧이어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단지동맹비’로 향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3월 5일에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하고 결사 동지 11명과 함께 왼손 무명지를 잘라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 만세’를 삼창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 단지동맹비이다.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한 그 해 10월 26일에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뜻을 모으고 힘을 모은 결사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단지동맹비를 방문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2001년에 세운 불꽃 모양의 기존 단지동맹비는 잦은 침수와 관리의 어려움으로 훼손이 심하였다. 이에 현지 한국 기업이 정부와 협력하여 2011년에 기존의 기념비를 이곳으로 이전하고 단지동맹비를 새로 세웠다고 한다. 새 기념비는 높이 4m, 폭 1m의 거대 흑석과 높이와 폭이 각각 1m 정도인 작은 흑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거대흑석 상단에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하단에는 "1909년 3월 5일 12人이 모이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국내가 아닌 연해주 땅에서 만난 안중근과 동지들의 숭고한 희생과 결사의 정신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낯설고 혹독한 기후의 땅에서 온갖 시련을 이기고 독립 의지를 불태웠던 선조들을 추모하며 그 희생정신을 잠시나마 기렸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와 결사 동지의 애국심을 마음에 담은 채 하산 장군 동상이 있는 크라스키노 전망대에 올랐다. 본래 이곳에서는 크라스키노 마을 전체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삼국(중국, 러시아, 북한) 접경 지역과 발해의 염주성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비바람과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젠가 다시 크라스키노를 방문하면 이곳을 꼭 찾아보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크라스키노에서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자루비노 항구였다. 자루비노항은 중·러 국경으로부터 18㎞ 떨어진 부동항으로, 중국은 동북3성의 훈춘과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자루비노항을 연결하여 태평양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고, 최근에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자루비노항을 개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한국도 자루비노항 개발 투자를 위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적이 있으나 아쉽게도 투자자가 없어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고, 다만 현재 속초를 출발해 자루비노항에 입국한 뒤 훈춘·도문을 거쳐 백두산을 다녀오는 일정이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자루비노항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하면 자연스럽게 크라스키노를 찾아 독립 운동가들을 추모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을 생각하니 국내 기업의 자루비노항 진출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 자루비노항 ⓒ강보선

우리는 다시 자루비노항에서 버스를 타고 지신허(地新墟)를 향하였다. 지신허는 1863년 함경도 농민 13세대가 두만강을 건너 정착한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로, 스탈린이 1937년에 연해주 고려인을 강제 이주시키기 전까지 1,700여 명이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으며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대부분 지신허를 거쳐갔다고 하니 고려인들에게는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그러나 현재 지신허는 본래의 모습은 사라진 채 터만 남아 있고 갈대만 무성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아쉽게도 그 옛터마저 눈으로 볼 수 없었다. 현재 지신허에는 2004년에 대중가수 서태지가 러시아 이주 140주년을 맞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연을 하고 그 수익금으로 세운 지신허 기념비가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우리 정부가 좀 더 이곳에 많은 관심을 가져 고려인들의 러시아 최초 정착지를 연구하고 역사적으로 기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탐방 일정을 조금 일찍 마치고 센터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는 이만열 장로님께서 ‘한국교회의 독립운동’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해 주셨는데, 기독교의 복음이 화해의 복음이고 평화의 복음임을 교회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이 특히 마음에 많이 남았다. 이어 성만찬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눈 한 가족임을 기념하며 연해주에서의 둘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계속)

강보선/ 대구대 국어교육과 교수

강보선  kangbs@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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