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두 번째 황제인 순종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 테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통감관저의 회의실에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다.

“한국 황제폐하와 일본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의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를 회고하여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코자하는 바...”로 시작하는 조약은 1조에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전부에 관한 일절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께 양여함”이라고 되어 있고, 2조는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 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낙(수락)하고 또 전연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을 승낙함”이라고 되어 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8월 29일, 순종황제는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공식 발표한다. 이것이 경술국치(國恥)다. 경술국치 106주년인 29일,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 퇴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1910년 8월 22일 서명하고, 29일 발표한 한일병합조약 문서. 사진 출처: 독립유공자유족회

문재인 “진정한 독립은 민주주의”
먼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주의는 우리 역사이자 정신입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문 전 대표는 “106년 전 오늘 우리는 치욕스럽게 나라를 빼앗겼지만, 국치의 아픔을 딛고 오히려 민주공화정의 새 역사를 열어갔다”며 “대한민국의 역사가 참으로 자랑스러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1917년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은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황제권 소멸'을 '민권의 시작'으로 규정했다. 새롭게 세울 나라는 '민주공화정'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해방 때까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지켜왔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 헌법은 1차부터 9차에 이르기까지 3.1운동과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는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밝힌 문 전 대표는 하지만 “그렇게 마련해 꽃피워 온 자랑스런 민주주의를 우리는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최근의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를 생각하면 순국선열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다. 고작 10억엔에 역사를 지우려는 행태 또한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위안부재단에 일본이 출연하기로 한 111억원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급하기로 한 정부 방침에 대한 비판이다.

문 전 대표는 “진정한 독립은 민주주의”라며 “역사 발전의 종착지 역시 더 완전한 민주주의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박근혜 정권은 바른 역사인식에서 출발한 두려운 마음으로 민주주의와 공화제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추미애 “임시정부 부정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일”
새롭게 더불어민주당 수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대표는 이날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개최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정부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법통인 임시정부를 부정하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고 우리의 현재를 부정하는 일이며, 또한 헌법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역사를 정권의 논리에 따라 함부로 만지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이든 부끄러운 역사이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 대표는 “독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하되 공과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은 바로 국민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이날 자신이 ‘독재자’라고 평가받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한 것에 대해 “독재에 대한 평가는 있는 그대로 쓰여야 하는 것이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후는 또 갖추는 것이 4.13 총선 민심, 제1당 더불어민주당 신임지도부가 통합을 하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그동안 연속 3년이나 불참하신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참여해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면서 “대한민국을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가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최근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이 ‘국론 분열’ ‘불순세력’ 운운했던 것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이만열 “‘선진한국’에 대한 자부심·애국심 강조는 교언영색”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국일보에 게재한 ‘국치일 아침에’ 제목의 칼럼에서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국내 정세와 관련, “청일전쟁에서 노일전쟁 사이에 한반도는 외세의 세력균형을 이루었고 이를 기회 삼아 독립협회 등 민권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났다. 지도자라면 자주화의 방향을 민력(民力)을 진작시켜 부국강병의 기초를 다지는 데서 찾아야 했다”고 밝혔다.

마침 동학농민혁명이 당시 민중의 요구와 역량을 제대로 알렸고, 통치자는 그렇게 분출된 민주역량을 북돋워 자주국가의 기초를 닦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그러나 고종이 응답한 것은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권 강화였다. 민중의 민주적 자주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것은 민주적 역량을 토대로 전 민족적인 부국강병·독립자주의 길을 모색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그 결과 황제 일인만 흔들면 나라를 좌우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이걸 간파한 일제는 을사늑약과 강점조약에서 황실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미끼로 나라를 탈취해 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명예교수는 “그런 군주 하에서는 이에 부응하는 관료 군이 형성되기 마련”이라며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매국 관료 군은 민중의 역량을 경시하고 외세에 의존하려는 혼군(昏君, ‘맹한 군주’) 하에서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민주적 역량 대신 황제권을 강화하려던 고종이 결국 ‘유능한 관료군’과 더불어 국치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자주의 상징인 전작권마저 외국에 헌납한 한국이 사드 정국 하에서 샌드위치처럼 되어 어쩌면 생존권을 부지하는 것조차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선진한국’에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지라고 강조하지만 공허한 교언영색이다. 100년 전을 교훈 삼는다면, 민중에 의한 민주적 역량 강화가 절감되는 ‘국치일’ 아침”이라고 밝혔다.

▲ 1918년 서울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대한제국 및 조선총독부 관리들이 찍은 기념사진. 가운데 모자를 벗고 있는 사람이 고종이고, 그 오른쪽 옆이 순종이다. 고종의 왼쪽 옆이 영친왕, 영친왕옆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조선총독이다. 사진 출처: 독립유공자유족회

조용래 “일방적 결정 통보는 민주주의와 한참이나 멀다”
<국민일보> 조용래 편집인은 ‘나는 민주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싶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사회가 역주행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우리는 분명 일제로부터 독립을 했고, 이어 재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우리의 정체(政體)요, 시민들의 자긍심이 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이 틀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조 편집인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직원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국민이다. 반대의견이 있으면 대통령에게라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맞다”면서 “직원이 맘에 안 들면 내보낼 수도 있고, 회사가 못마땅할 땐 직원이 떠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란 지위는 마음대로 선택하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결정했으니 그저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만 충만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 편집인은 박 대통령을 향해 “일방적 결정 통보는 민주주의와 한참이나 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 시절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었다. 자아실현이 곧 행복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민주주의가 뒷걸음치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은 누가 앗아갔나”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치일 106주년인 29일, ‘북핵 위기’와 그에 대응한 ‘핵무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근혜 “나라를 지키는 일에 모두가 한마음 돼야”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탄도미사일에 핵을 탑재하게 된다면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나라를 지키는 일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와 군은 진화하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에 대응해서 실질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고 북한의 도발 시도 자체가 북한 정권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확고한 응징 태세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진석 “핵추진 잠수함 국내 배치 필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9일 아침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군 당국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 등 북한의 SLBM 발사를 근본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검토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북한의 SLBM 발사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동북아 안보에도 엄청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SLBM은 발사 원점을 탐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지상 미사일 발사보다 더욱 심각한 안보위협”이라면서 이같이 주문했다.

그러면서 “어제 저를 포함한 23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모임에서도 북한 SLBM 발사를 봉쇄하기 위한 핵추진 잠수함 배치를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도 우리 군은 2020년까지 4천톤급의 핵추진 잠수함 3척의 건조를 추진하다가 중단했던 전례가 있다. 군 당국은 사드배치, 핵우산확보 등 한미동맹 강화와 아울러 장기매복, 첨단탐지, 공격력 등을 갖춘 핵추진 잠수함 배치를 적극 검토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사드를 넘어 핵잠수함 도입까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야권 등 일각에서는 민주주의 역주행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비해,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북한 위협을 앞세워 무기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 안전을 위해서라는 무장화가 ‘민주주의’가 빠진 채로 진행될 때, 그것은 오히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106년 전, 나라 잃은 비탄으로 눈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바라봤어야 하는 백성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지금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유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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