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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새터민 대신 ‘북향민’이라 불러주세요

꽃피는 춘삼월이 엊그제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계절을 우리는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통일소식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반도 내에 반복되고 대치되는 답답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통일’은 더욱 그립습니다. 한반도가 기억하고 있는 ‘통일의 기억’이 너무 멀리 있어 ‘통일소식’이 반갑지 않은 걸까요? 1945년 ‘해방의 감격’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사라져가고 분단시대에 살고 있으나 ‘분단’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세대에게 외쳐보는 통일, 참 낯설고 외로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한반도의 숙명, ‘통일’의 대업이 이루어질 그날을 믿고 확신하기에 외쳐야만 하는 사명과 부르심 앞에 오늘도 우직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탈북민 호칭, 이제 바꾸어야 할 때
6.25전쟁 이후 한국으로 온 북한 국적의 사람들을 일컬어 ‘귀순자, 귀순용사’로 부르다가 수적으로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탈북자, 자유이주민, 탈북주민,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탈북민’등으로 불리는 건 이미 다 잘 아는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요즘 가장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는 호칭이 ‘탈북민’입니다. 2005년 통일부에서 탈북자라는 명칭이 어감 상 좋지 않아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고 긍정적·미래지향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 선정한 호칭이 ‘새터민(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이 용어는 화전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탈북민들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수많은 탈북민단체와 탈북민들이 새터민 명칭 사용 중단을 결의하고 통일부에 관련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탈북민들의 ‘새터민 명칭 사용거부’에 대한 요청에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언론기자단, 일반국민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서 선정된 것이라고 맞서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보였지만 탈북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우리가 ‘새터민’이면 북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헌터민’이냐?”라고 달가워하지 않는가 하면, 남한 사람들 역시 그럼 우리도 ‘헌터민’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 탈북민 봉사단체로 구성된 착한(着韓)봉사단과 고려대 사회봉사단이 지난 5월 경기도 연천군 나룻배마을에서 연합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

그렇다면 ‘새터민’에 맞서 ‘탈북자’라고 불러달라고 호소했던 일부 탈북민 단체들의 의견을 탈북민들이 다 호응할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귀순자, 귀순용사’가 영웅적인 이미지가 짙다면, ‘탈북자’는 호칭 자체만으로도 인격 모독적이고 비하하는 이미지가 큰 것으로 비춰져 선호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북한이주민 또는 이주자’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고 남서울은혜교회에서는 ‘윗동네, 아래동네’라는 표현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탈북민’을 한국 국민으로서의 ‘탈북민’으로 규정한다고 할 때 중국 등지에서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으므로 그들을 구별하여 ‘탈북자’로 지칭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 탈북 작가도 있었습니다. 결국 공식적인 법률용어로 ‘북한이탈주민’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용어에서‘이탈’이라는 어감이 주는 부정적 의미도 ‘탈북민’의 ‘탈’자도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것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 마땅한 이름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모든 탈북민들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용어는 없을까요? 북한도 아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다수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고 사실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가장 바람직한 호칭이 나오는 것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름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이름이 바뀌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이름 바뀌는 시점의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등 이들의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탈북민들은 한국사회에 정착을 잘하든 못하든 그것과 상관이 없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 이후 남과 북을 잇는 ‘가교’역할로서의 중요한 사명을 위해 먼저 부름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탈북민들이 걸어온 삶과 인생을 존중하고 이들을 어떤 대상이 아니라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봄으로 출발하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언젠가 어떤 남한 분이 어떻게 불러야 실례가 되지 않겠느냐고 정중히 물어 오시는 태도에 감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부르고 싶으신 대로,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들에게 ‘누구’로 불리느냐보다는, ‘내가 지금 누구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누가 뭐라고 부른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실 통일이 되면 다 사라질 용어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저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탈북민’, ‘한국인’, ‘통일인(統一人)’ 세 가지로 정의를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탈출하여 온 사람이 맞기에 ‘탈북민’도 맞는 말이고, 또한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기에 ‘한국인’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일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도 통일 이후에도 남과 북 두 체제를 경험하고 ‘통일을 먼저 산 사람으로서의 통일인’으로 ‘가교(架橋)’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저와 같은 모든 탈북민들의 불변의 정체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기독교인으로서 제 개인이 정의한 정체성이기 때문에 모든 탈북민들이 이렇게 생각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즉 ‘통일인’이라는 호칭은 오히려 부담을 줄 수도 있고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저와 같은 탈북민들이 이 땅에서 해외에서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살아가면서 들어야 하는 이름을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북향민으로 불러주세요
그렇게 10여년을 살아온 제가 지난 해 고향 선배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습니다. ‘북향민(北鄕民)’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탁을 받기 전 ‘북향민’에 대한 의미를 한번 들었던 터라 흔쾌히 승낙하고 기도하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가운데 뜨거운 감동과 우리의 정체성을 승화시키는 떨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청드립니다. 우리 모두 함께 ‘탈북민’이 아닌 ‘북향민’으로 부르는 운동을 펼쳐보면 어떨까요?

‘북향민’은 우선 그 어떤 용어보다도 담고 있는 내용적 의미에서도 또한 현재적으로나 미래적인 의미 모두를 담아내는 순화적인 용어입니다. 아직 자주 사용하던 용어가 아니어서 부를 때 어감적으로 익숙지 않고 어색함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용어에 담긴 한자 뜻 그대로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현재적으로도 미래적(여기서 말하는 ‘미래적’의 의미는, 통일된 이후에 그렇게 부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통일은 반드시 된다.’라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뜻한다. -필자 주)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는 것 같아 사용하면 좋겠다는 소견입니다. 아니 사실 제 주변에서 이미 많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북향민’하면 연결되어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겁니다. 바로 ‘실향민(失鄕民)’(이하 ‘실향민’)입니다. 한자 뜻 그대로 실향민은 고향을 잃었다는 의미로, 고향을 떠난 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을 말하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이산가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북향민’은 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로서는 ‘실향민’과도 같고 또한 제2의 이산가족이기도 합니다. 다만 ‘실향민’과 ‘북향민’의 차이는 시대(時代)차이와 세대(世代)차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향민’은 1940-1950년대에 뜻하지 않은 분단으로 고향을 떠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신, 대부분 고령의 연세로 살고 계시는 기성세대 분들이십니다. 반면에 ‘북향민’은 대부분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하여 꾸준히 한국으로 오고 있는 사람들로서,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입니다.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실향민’에 비해 대체적으로 젊은 세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 구분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실향민’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지는 ‘북향민’에게는 또 다른 정체성이 부여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70년 분단으로 인해 고향도 헤어진 가족도 다시 만나지 못한 우리의 이산가족 1세대인 ‘실향민’들과는 달리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이 ‘북향민’이라는 용어 속에 담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산가족 2세대로서 이산가족 1세대가 이루지 못하고 보지 못한 통일을 위해 더욱 잘 살아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도 깃듭니다.

2016년 8월 말 현재 북향민은 29,688명입니다. 정치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으면서 미래지향적이면서 밝은 ‘북향민’이라는 용어가 많은 탈북민들에게 편한 용어로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렇게 구분지어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모든 것들을 잠재울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오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을요.

북향민! 이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갈 수 없는, 남한 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생의 골 깊은 계곡을 지나온 소중한 분들이십니다. 실제로 통일되면 고향에 꼭 가리라 다짐하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분들을 ‘실향민’분들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러겠습니까? 그러나 가고 싶어도, 가고 싶지 않아도 고향은 고향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북향민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나 미래에 가교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주시고 함께 ‘통일을 이곳에서부터 살아가고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해봅니다. 또한 우리 북향민 여러분께도 ‘힘을 내셔서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음에 감격하며 손잡고 통일을 향해 달려봅시다.’라고 속삭여봅니다. 앞으로 ‘북향민’들을 위한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박예영(오테레사)/ 북향민,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박예영  ot20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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