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횡단해서 평양을 지나 부산까지 간다고요? 그것이 가능합니까?”

‘평화열차 프로젝트’(Peace train)를 소개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
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프로젝트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열차프로젝트는 한국 교회가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준비하면서 내놓은 한반도 평화 기획의 일환이다.

WCC 총회에 참석하는 세계교회 참가자 중 일부가 열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출발해,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베이징을 거쳐 평양과 서울,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 전체적인 구상이다. 그 과정에서 중간 거점지역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행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 이슈를 세계에 알리고 WCC 총회의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다. 평화열차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평양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분단의 현실을 넘어야 하고,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 프로젝트의 실현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쏟아지는 질문과 의심을 뒤로한 채 평화열차 프로젝트 답사팀이 떠났다. 나는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13일까지 16박17일간을 동행 취재했다.

▲ 베를린 밤 거리 풍경. ⓒ최창민 기자

5월 28일(화). 서울-베를린.
며칠 전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는 기록자로서 준비되어 있는가. 몇 가지 연결되어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관련된 자료, 거점지역에 대한 역사적 기술 등을 검토했다. 밤을 견딘 새벽안개가 아침을 열듯이 머릿속에서 퍼즐이 완성되어 갔다. 학자나 연구자들의 기록은 딱딱하고 지루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긴 기차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른 짐보다 우선적으로 책을 가방에 넣어야 할 것이다. 작은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데 책만큼 값진 것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충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준비를 마치고 아침이 밝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환전소를 찾았다. 유로화, 루블화, 위안화를 각각 환전해 봉투에 나눠담았다. 화폐를 손에 쥐고 보니 이 프로젝트의 방대함이 더 실감이 났다.

이번 평화열차 프로젝트 답사팀은 총 여섯 명이다. 나핵집 목사(평화열차 소위원회 위원장), 채혜원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국 국장), 박도웅 목사(WCC 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총무국장), 이창휘 간사(교회협 화해통일국 간사), 강소라 기자(Good TV), 그리고 나였다.

답사팀이 전부 모인 것은 지난 준비 모임 이후 처음이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기대와 우려, 설렘과 두려움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보내게 될 16박17일의 여정. 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났다.

우리를 실은 모스크바행 러시아 항공 AEROFLOT SU2316편은 12시5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약 9시간 30분을 비행한 탓에 기내식은 두 번 제공됐다. 나는 소고기와 닭고기를 선택했고, 맛은 적절했다. 다만 조금 짠맛은 탄산수로 달랬다. 톡 쏘는 무색무취의 탄산수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내 옆자리는 신혼부부가 차지했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계획인 듯 했다. 파리의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동할지를 놓고 장시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승무원 몇몇은 나이가 지긋했고, 대부분 친절했다. 간간히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대체로 조용하고 편안한 비행이었다.

목적지인 베를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모스크바를 경유해야 했다. 답사팀은 모스크바국제공항 환승섹터 안에서 약 2시간을 머물렀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다른 사람들은 커피, 나는 달달한 초콜릿을 마셨다. 기분을 전환하기에는 이만한 음료가 없다. 잠깐의 휴식은 이것 때문에 한결 달콤해졌다. 오후 6시 전에 상당수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는 점,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는 점 등은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나의 선입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답사팀을 실은 비행기는 2시간 45분을 더 날아서 독일 베를린 쇠네펠드(Schonefeld)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낯선 땅 베를린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베를린기독교한인교회 조성호 목사 부부와 성도들이었다. 우리는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베를린 시내를 관통해 알렉산더 플라자 호텔로 이동했다. 해는 뉘엿뉘엿 도시 스카이라인 뒤로 숨었고, 독일 하늘은 검붉게 물들어갔다. 택시 창문을 통해 본 베를린 시내는 녹지가 인상적이었다. 도로변 곳곳에 높이, 무성하게 솟아오른 나무들은 이곳이 도시 한복판이라는 것을 잊게 했다. 현대식 건물과 어우러진 근대 건축양식의 건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녹지들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 베를린에서 필자.

독일의 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세련되고 품격 있게 짙어졌다. 지구 반대편을 향해 12시간을 비행한 답사팀은 호텔에 짐을 풀고 베를린 밤거리로 나섰다. 호텔 왼편 멀지 않은 곳에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멋진 음악에 기대 맥주를 마시는 연인들이 즐비했다.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광대가 눈에 띄었다. 전차는 늦은 저녁까지 불을 밝히고 도시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표정과 대화에는 웃음과 여유가 엿보였다. 우리는 야외에 설치된 파라솔에 둘러앉았다. 동행이 있는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베를린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최창민/ 기독교연합신문 기자>

최창민 기자  nrprin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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