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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선과 평화의 숨은 그림 찾기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7.11.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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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압승의 속사정, 개헌에 제동 걸리나?

지난 10월 22일 일본에서 실시된 총선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베 총리가 정치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불어온 북풍에 의지하여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야당의 준비 부족을 틈타 반전을 꾀한 승부수가 통한 것이다.

자민당이 284석으로 단독과반을 확보했으며, 공명당의 29석을 합쳐 313석을 확보한 연립 여당이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에 50석을 차지한 희망의 당과 11석을 차지한 일본유신회 등 헌법 개정지지 세력을 더하면, 헌법 개정 찬성 의원은 80%에 달한다. 리버럴 세력이 결집한 입헌민주당은 55석으로 제1야당의 지위를 확보하여 12석의 공산당, 2석의 사민당과 함께 헌법 개정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갈 것이다. 하지만, 선거 압승의 실적을 바탕으로 아베는 자민당 총재 3선에 도전하여 숙원이던 헌법 개정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는 최종 완성 단계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농후하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헌법 개정에 낙관할 수 없는 아베의 속사정이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에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총선은 태풍과 북풍 속에서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전날부터 당일에 걸쳐 일본열도는 초대형 태풍 ‘란’의 영향권 속에 있었다. 무당파가 투표를 포기하는 가운데 자민당과 공명당 등 조직 기반이 튼튼한 정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였다. 53.6%로 전후에 실시된 선거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은 쟁점이 분명하지 않은 선거였다는 점에 더해 날씨 탓이 크다. 그런 가운데 비바람을 뚫고라도 기어이 투표장에 가겠다는 개헌 저지의 ‘신념’이 발휘되었다. 개헌 분위기를 띄워왔던 산케이와 요미우리 등 보수 신문이 선거 당일 1면 기사에 아베의 선거유세 장면이 아닌, 입헌민주당의 신주쿠 가두 유세 장면을 실은 것은 그 전조였다. 태풍은 이번 총선을 조직과 신념의 선거로 만들었다. 이번 선거는 향후 일본 정치를 가늠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수치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정치 스캔들의 역풍 속에서 중의원 해산으로 국민의 신임을 확인하겠다고 나선 배경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를 국난극복의 선거로 명명하고, 유세마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일본 국민의 머리 위로 두 차례나 미사일을 날린 북한의 행동이 일본의 안보 보수주의자들을 결집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거꾸로 개헌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퍼지면서 호헌 평화주의자들이 결속하는 모습도 보였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들어 미국의 선제공격과 이로 인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위기의식을 고취하며 개헌 필요성을 역설하던 보수우익 쪽에서도 일방적이고 군사적인 압박만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론이 등장했다. 북·미간에 초긴장 국면이 형성되면서 일본에서는 미일동맹으로 연루되어 북한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발동되었다. 탈냉전 이후 저팬 패싱의 두려움 가운데 미일동맹을 꾸준히 강화해 온 일본에서 북풍은 개헌의 역풍으로 작용했다. 북풍은 호헌의 평화주의를 조직화시켜 입헌민주당의 약진을 가져왔다. 이에 반해 일본유신회 출신들 일부가 탈당해 만든 정당으로, 아베의 자민당보다도 더 우익 성향인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마음의 당)’은 참패하여 궤멸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일본에서 양당체제는 출현하지 않았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집권 여당에 대해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가 만든 희망의 당이 대립하는 양당체제는 문자 그대로 희망에 그쳤다. 선거 결과, 자민당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희망의 당, 왼쪽에 입헌민주당이 배치되는 3극 체제가 만들어졌다. 자민당은 꺼져가는 희망의 당보다는 일어서는 입헌민주당과 중원다툼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입헌민주당이 제1야당이 됨으로써 자민당의 우경화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생겼다.

그동안 거칠었던 아베의 우경화 행보가 주춤해질 가능성은 자민당 내 구성과 관계 변화에서도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상이 이끄는 고치카이(宏池會)는 전통적으로 자민당 내 리버럴 그룹으로 간주되는데, 28명의 출마자가 모두 당선되어 자민당 내 온건파가 일정한 거점을 확보했다. 차기 수상 1순위로 지목되는 기시다 전 외상의 입지가 강화된 것도 아베의 정국 운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평화와 국제협조주의로 기울어지는 정치구도

일본에서 희망의 당의 실패는 유럽의 정세와 비교해 볼 때, 동아시아에서 국제주의에 기반을 둔 협조 질서가 소생할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희망의 당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정당인데, 국내에서는 반원전 정책과 같은 좌파 포퓰리스트 정책을, 대외적으로는 배외주의적인 우파 포퓰리스트 성향을 드러냈다. 이번 선거는 포퓰리스트 정당에 대한 지지가 일본에서는 확장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선거 열흘 후, 희망의 당내에서조차 당 존속을 위해 개헌에 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일본 국민의 여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추진하면서도 이러한 국민의 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희망의 당이 ‘(도쿄)도민 퍼스트’에서 ‘일본 퍼스트’를 거쳐 만들어진 당임을 생각해보면, 일본 국민은 자국우선주의에 의구심을 갖고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에 대한 지지가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임이었다고 할 때, 아베노믹스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서는 TPP 추진이 불가결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이 빠진 TPP 11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기수를 자임하고 있다. 일본의 주요 식자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아베 총리가 초장기 집권의 길을 연 바에는, 기왕에 장기집권에서 구축한 국제사회 정상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국제협조주의로 이끌어오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연령별 득표율을 보아도 자민당은 당분간 거친 행보를 자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대의 자민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가운데 18-19세의 자민당 지지율이 20대보다 낮으며, 40대에서 60대까지의 지지율은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대의 자민당 지지는 아베노믹스의 지속을 통해 높은 취업률이 유지되기를 희망하는 태도가 나타난 것이다. 18-19세 지지율이 그보다 낮은 것은, 헌법 개정으로 2015년 안보법제 채택과 같은 안보노선이 추인될 경우, 징병제가 채택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40대에서 60대의 지지율이 낮다는 것은 잃어버린 20년 세대의 자민당 이탈로 해석된다. 자민당은 18-19세의 지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40-60대의 지지를 되찾는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은 자민당이 우경화의 숨을 고르면서, 중원에서 입헌민주당과 겨루어 지지를 확대하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을 예측하게 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헌법 개정 찬반이 양의 싸움에서 질의 싸움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헌법 개정론자가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헌법 개정을 향한 아베의 행보는 향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헌법 개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그룹이 과거보다 단단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베의 계산을 복잡하게 한다. 임기 내에 개헌을 마치려면 그것은 ‘작은’ 개헌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군사적 보통국가’의 완성도는 낮아질 것이다. 만일 시간이 걸릴 ‘큰’ 헌법 개정에 목을 매달 경우, 임기를 마치기 전에 개헌을 완료하는 것은 어려우며,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그랬던 것처럼 소란스러움 속에서 불명예스럽게 총리직을 마칠 수도 있다.

따라서 아베는 다른 데서 야심을 가져볼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및 러시아와의 평화조약은 전후 일본외교의 양대 현안이다. 아베 총리는 작년부터 푸틴을 상대로 정력적인 대 러시아 외교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은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 단계에 있으며, 영토문제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다. 북·일 국교정상화 또한 난제 중의 난제이긴 하지만, 아베 총리는 본인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납치 일본인 문제와 북한 핵·미사일 정국에서 대북정책을 주도하여 그 방향타를 설정해 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의 인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본격적인 국교 정상화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나, 바로 이 점이 북한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일본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일본을 평화공동체 구축의 파트너로 삼자

총선 결과를 놓고 아베 총리는 고심하는 듯하다. 아베 총리가 현명한 지도자라면, 향후 헌법 개정 문제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중간지대로 나오는 한편, 저팬 패싱보다 말려들기의 가능성이 더 커진 미일동맹을 보완하는 외교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러·일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시야에 두고 한국 및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 그 내용이 될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설정한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에서 일본이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 총리는 선거 직후, 동북아 정상들과의 전화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호소했다. 이를 아베 총리가 본격적으로 ‘군사적 보통국가’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대북 외교 전선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북한의 관심을 일본으로 돌리고 대화를 유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월 6~7일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경제협력의 성과를 설명하며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최근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11월 10일부터 베트남에서 열릴 APEC 회의에서 아베 총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할 계획이며, 이에 대해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마친 중국도 적극적으로 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미일동맹의 범위 밖에서도 사고하며 행동하고 있다.

일본 우익은 아베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데다가, 헌법 개정에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물론 아베가 이들 목소리에 떠밀려 주변국과의 마찰을 각오하면서 헌법 개정에 집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실패가 될 것이다.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 아베의 일본에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아베를 실질적이고 진지한 파트너로 삼아, 아베 뒤에 포진하여 우경화를 부채질하는 역사수정주의자들로부터 아베를 분리 시켜 리버럴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 중원으로 이끌고,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축의 조력자로 서게 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의 출구를 논의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THAAD 문제로 뒤틀렸던 한중관계가 수습 국면으로 돌아서고, 총선을 마친 일본과 당대회를 마친 중국이 중·일 외무 방위담당간부 안보대화를 열면서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중·일의 새로운 협력의 장이 열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에서 열리는 APEC 회의가 북핵 문제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된다면,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도쿄 하계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2년 동안이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평창 올림픽 폐막으로부터 평화의 성화 봉송을 시작하여 도쿄 올림픽으로 이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이 칼럼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제공합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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