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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야 말로 적폐 중 최고의 적폐”<릴레이 통일코리아>(10) 정연진 AOK 대표(下)

정연진 AOK 대표는 미국은 물론 국내, 그리고 북한에도 다녀왔다. 그의 언행을 가지고 <블루투데이>라는 매체에서는 ‘종북 인사’로 규정하는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정 대표가 지난해 초 그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1심 결과가 나왔고 피고측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셨다고 들었다. 결과 예상은 하셨나?

예상 못했다. 내가 제소한 소송 전에 재미 교포 분 중엔 비슷한 소송에서 100만원, 3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아낸 적은 있다. 이번 소송에서 중간에 재판부가 바뀌었는데 그 전 재판부는 저에게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통상 재외동포가 국내법정에 소송할 때는 공탁금을 유치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첫 재판부는 제가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국내 국적을 가진 재외한인이면서 주민등록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이런 사람한테 공탁금을 걸 필요가 없다’고 해줘서 소송이 원활하게 진행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공탁금을 걸면서까지 재판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얼마 안 있다가 재판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 측 변호사가 ‘재판부가 굉장히 보수적인 판사들로 바뀐 것 같다’고 해서 승소를 전혀 예측하지 않았다.

-결과 나왔을 때 어땠나?

놀랐다. 1000만원 배상이라는 게 국내에서는 굉장히 큰 금액이라고 하더라. 판결문이 몇 십 페이지 될 정도로 매우 긴데, <블루투데이> 기사를 조목조목 짚어주면서 어떤 기사는 완전 삭제, 어떤 기사는 부분 삭제, 그렇게 21개 기사에 대해 전체 또는 부분 삭제 명령을 내렸다. 재판 판결이 한두 장 짜리로 간단하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재판부가 이렇게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단어 하나하나까지 짚어보는구나’ 하는 걸 보면서 놀랍고 고마웠다.

-앞으로 판결 어떻게 될 것 같나?

저는 사실 ‘종북몰이’ 상대로 승소한 게 기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정연진은 종북인사다, 아니다’ 이러한 논리로 양측이 싸우는 것인데, 그 자체는 종북 프레임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내가 종북이냐 아니냐는 이미 종북 프레임을 인정하는 거잖나. 법정 판결문에서는 ‘한국에서 종북인사로 몰리는 건 심각한 치명타이고 많은 사회활동에 지장을 받는 것이다’라고 재판부도 그러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 굉장히 씁쓸하다. 재판부조차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닌가. 종북이라는 편가르기 프레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4일 서울에서 열린 AOK 총회에서 정연진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AOK

-요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화이트·블랙리스트 문제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 사실대로라면 개인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에서 어마어마한 부정이 저질러진 건데?

이런 것이야말로 인권문제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 아닌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 사상을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말 통일시대를 원한다면 북한 사람들도 남한의 출판물을 보고 남한 사람들도 북한의 출판물을 보고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같이 북한의 출판물 하나만 소지하고서도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국가보안법은 없어져야 한다. 예를 들자면 제가 2005년 평양에서 일제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제회의가 있어 참석했을 때 북한의 역사만화책을 접하고 놀랐다. 단군이나 단군의 아들들과 관련해서 우리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만화책들이 있어서 사왔다. 통일강연 할 때 그걸 가지고 ‘이건 북한의 단군만화다. 우리 겨레가 5000년 이상의 같은 민족정체성을 이어오고 있는데 남북이 70년의 분단세월을 극복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자’는 취지에서 아이들한테 강연하곤 하는데 그런 것들도 <블루투데이> 에서는 ‘정연진은 북한의 출판물을 가지고 순진무구한 아이들한테 강연하고 다닌다’ 이렇게 보도를 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시대를 준비하려면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지만 상호 이해와 화해를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5년도에도 국가보안법을 없앨 것 같았는데 결국 불발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국가보안법 얘기가 아예 나오기도 힘든 분위기인데?

한국의 시민과 시민단체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적폐청산’이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적폐 중 최고의 적폐는 분단이다. 모든 한국의 사회문제, 인권탄압, 부조리, 부정의 이런 건 결과적으로 분단체제, 분단기득권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자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의 최고봉이나 깊숙한 저변은 분단이기에 ‘분단체제를 해체하자’는 데 풀뿌리의 에너지와 역량과 열정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단적폐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둔 상태에서 ‘이걸 개혁하자. 저걸 개혁하자’ 하는 건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분단 적폐의 최선봉이 국가보안법이라 할 수 있는데, 재판부도 그렇고 아직은 남북이 대결국면이기에 국보법 철폐는 시기상조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국보법 철폐는 국내에서 일언반구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진 ‘국가보안법 철폐하자’ 하면 종북단체로 프레임을 씌우고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 무서워하고 그래서 얘기조차 꺼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국보법 철폐’ 주장도 있어야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남북한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 앙금을 해소할 수 있는 게 민간인 학살문제라 본다. 보도연맹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저는 노근리 학살문제와는 연계를 맺고 항상 뭐가 있으면 참여하면서 연대하고 있다. 보도연맹의 경우는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거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자국민을 집단학살 할 수가 있나. 주변에 보면 많은 분들이 가족 중에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계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꺼내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을 못한다. 최근 한 지인도 자기 가족이 그런 피해가 있는지 어머니가 최근에 알려줬다고 한다. 평생 말씀을 안하시다가 말이다. 이렇게 평생 입을 닫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이 민간인 학살 문제를 사회 이슈화해서 이걸 처리하려면 결국 분단적폐세력에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거고, 그것을 해소하는 한 방편으로써 ‘국가보안법 철폐’ 목소리가 나왔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하나의 큰 운동판이 형성될 수 있으리라 본다. 현 한국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 하는 것은 확장에 한계가 있다. 더 깊은 심연을 건드려야 한다.

-그동안 국내의 통일운동이 담론 중심인데다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정 대표의 통일운동은 구체적이고 재미가 있다는 평가다. 어디서 그런 게 나올까?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

시각의 문제라고 본다. 난 이상하게도 사춘기 시절부터 성공해서 잘 나가는 사람들보다는 시장바닥에서 장사하고 있는 할머니 같은 분들, 밑바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동네가 그런 곳이었나?

그렇진 않았다. 하여튼 그렇게 민초들의 아픔이 많이 와닿았다. 내 생일이 8월 15일이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원래는 9월 15일 태어날 예정이었는데 호적은 그렇게 해놨는데 8월 15일에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한 달 동안 있었다. 나는 왜 8월 15일에 태어났지? 난 왜 온 국민들이 태극기를 흔들어주지? 그러다가 이게 광복인가? 이게 정말 해방인가? 생각을 많이 했다. 저는 좀 특이했던 게, 초등학교 때 역사교과서에 하도 줄을 긋고 읽어서 역사교과서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그렇게 했다. 우리 아버지가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늘 ‘공부하지 말고 불끄라’고 야단치실 정도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불 덮어쓰고 플래시 켜고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역사책 보느라고 말이다. 그만큼 역사에 대한 애정, 풀뿌리 하층민에 대한 아픔이 내면화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우리 집이 그렇게 못사는 집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 게 체질화되어 있다 보니까 나는 지식인들이 어렵고 현학적인 용어로 얘기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오죽하면 내가 서울대 2학년을 다니다가 ‘아, 이 물에서는 도저히 못놀겠다’고 대학을 박차고 나왔겠는가.

-그것 때문에 그만두신 건가?

대학교 2학년인데 연극반에 들어갔는데 책을 보라고 하는데 <민중과 지식인> 이런 책이었다. 그걸 학생들이 다 읽는데 나는 ‘대학교 2학년 짜리가 무슨 지식인이라고 민중을 계도하냐?’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이런 게 가짢았던 거다. 어릴 적부터 반골기질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민중을 위한다고 하면 여학생들은 한 달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옷을 잘 입고 다니면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조아가 되는 거다. 그런 이분법이 싫었다. 또 쉽게 말할 수 있는 걸 어렵게 말하는 걸 되게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박사학위를 끝까지 안한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지 힘이 난다. 그러다 보니까 통일운동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이런 걸 고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민 개인 입장에서 ‘통일’ 하면 막연하다. 통일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 입장에서는 일단 ‘내가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지금 분단된 나라에서 계속 살고 있는데 죽을 때는 어떤 나라에서 죽어야 할까?’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 역사를 길게 보는 훈련이 있어야 된다.

-그러면 고조선 시대부터 봐야 하나?

그건 아니고 100년 단위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는데 조정이 청나라군대를 끌어들이고 일본군대까지 들어와 동학농민은 거의 다 죽었다. 그 세력 일부가 3.1 혁명을 일으켰는데 또 일본에게 많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점차점차 역사는 진보해서 빼앗긴 주권도 되찾았다. 그리고 분단과 전쟁, 독재를 거쳐 민주화를 이뤘다. 그 와중에 남북의 화해도 있었고, 잠시 후퇴했지만 국민들이 일어나 역사의 바퀴를 다시 굴러가게 했다. 지난 100년을 훑어보면 역사는 이렇게 전진해 온 것이다. 동학혁명에서 120여년이라 흐른 현 시점에서 우리는 어떠한 시대를 꿈꾸어야할까.

-분단과 통일만 놓고 볼 때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0년 단위로 역사를 보듯 앞으로 100년의 관점에서 지금을 보면 좋겠다. ‘우리는 분단 조국에 태어나서 지금 분단 조국에 살고 있기에 분단이 너무 익숙하지만 만약 분단이 없는 하나의 온전한 코리아에 후손들이 살게 될 때 분단 조국에 사는 게 얼마나 끔찍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통일이 안되는 이유가 많겠지만 그 중 하나가 현재의 남한, 현재의 북한만 보기 때문에, 즉 현재 위주로만 통일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현재는 이렇게 쪼개져 있지만 원래 우리는 하나였고, 우리 역사의 큰 흐름도 분열이 있으면 통합이 뒤따라오는 게 추세였다. 삼국시대가 있었으면 통일신라가 있었고, 후삼국이 있었으면 고려가 통일하는 등 분열의 시기가 가고 통합이 오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의 추세였다. 내가 엄마 아빠로서 ‘우리 자녀들은 어떤 세상에 사는 게 행복할까?’ ‘그럼 내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이렇게 분단체제의 모순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그밖에 통일단체에 참여하거나 교육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있다. 일단 ‘우리가 과연 이 분단체제 해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부터 고민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진지한 고민이 없다. 고민이 없으니까 실천도 없는 거다. 젊은이들을 좌절시키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현실은 무분별하게 미국 체제를 따라가다가 신자유주의에 융합되면서, 국가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계속되는 체제여서 더욱 힘들다. 나의 행복과 우리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분단을 해체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더 이상 길이 없다. 그런 절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절박한 마음과 고민이 있으면 ‘내가 뭘 해야겠다’는 실천방안이 나오게 되어 있다.

AOK가 통일운동의 일환으로 펼치는 평화보자기, 카드 등. ⓒAOK

-5년, 10년 후에 이뤄질 통일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통일을 보는 게 낫겠다는 말씀인가?

5년, 10년 후 통일된다면 불행이다. 남북간 많은 차이를 해소하고 서로에게 쌓인 원한을 푸는 것, 즉 해원(解寃)을 통해 상생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평화로 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평등의 정신인 것 같다. 상대방을 나와 동등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어떤가. 돈이 있으면 지위가 높아지고 돈이 없으면 낮아지지 않나. 평등의식부터 우리가 높이기 시작할 때 통일된 나라가 비로소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의 통일은 북녘 인민을 2등, 3등 시민으로 만들고, 돈 가진 사람만 행세하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사회, 그런 체제라면 지금의 불행이 확대되는 통일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떠한 사회가 되어야 할까?’ ‘어떤 사회가 되어야 내가 행복할까?’ 이런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부터 시작해서 ‘모든 모순과 적폐의 저변에는 분단이 있구나’ 하는 인식에로의 도달, 거기서부터 새로운 사회, 진정한 통일시대로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고 본다.

-앞으로 2-3년이 한국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촛불시민이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는데 변화를 이끌어 우리 모두가 제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로 갈 수 있느냐 마느냐, 그 기로가 앞으로 2~3년이 판명할 것으로 본다.

-그 근거는 뭔가?

통일운동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사회를 위한 변화를 담아내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구호에 그치는 통일운동은 그냥 정치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시민의 많은 열망을 담아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것은 우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과 성찰과 실천을 통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 20세기의 여러 가지 모순이 집약된 곳이 한반도 아닌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간답게 대접받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다. 우리가 새로운 비전을 보이면서, 통일코리아가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20세기 모순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세대로 나아갈 수 있는 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면 세계사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전(전쟁반대)을 위한 대 반전이라고 할까. 그럴 수 있을 때 통일의 길도 자연스럽게 열릴 거라고 본다. 그 전환점을 2~3년 안에 못 만든다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대전환을 만들기 위해서 풀뿌리 통일 일꾼들을 키우는 교육운동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 그래서 절박하다.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통일 분야의 집단 지성을 통해 건강한 통일담론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향후 인터뷰이들과 독자들의 만남, 북한 사람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장을 마련해가려고 한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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