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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독교사전> 발간되면 한국교회 충격, 각성 일어날 것”<북한기독교사전> 집필자 이순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인터뷰

통일 이후 또는 통일 과정에서 남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탈북민 지원, 북한 교회 재건, 복음 전도, 지역 내 복지 및 사랑의 공동체 구현.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사역들이 많겠지만 과거 기독교 역사를 발굴하는 일이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던 북한 교회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은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긋나고 끊어졌는지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북한을 포함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기독교역사연구소)가 2015년부터 시작한 <북한기독교사전>이 이제 4년여의 대장정을 마치려 하고 있다. 이번 달 말 마지막 집필자 모임을 갖고, 1차 원고 집필을 마무리한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2~3개월의 자문위원들의 자문과 수정까지 하면 빨라야 연말부터 편집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사전은 내년 초나 되어야 세상에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 성산동 기독교역사연구소 사무실에서 <북한기독교사전> 집필자 중 한 사람인 이순자 책임연구원(기독교역사연구소)을 만났다. 이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나온 사전의 가제본을 보여주며 “집필자들이 크로스체킹을 하다 보니 1차 자료에서 연도 등 틀린 부분이 많았다”며 “작년 말부터 크로스체킹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기독교사전> 집필자 중 한 사람인 이순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유코리아뉴스

이 책임연구원이 말한 1차 자료는 고 이찬영 목사의 ‘북한 기독교 100장면’, ‘해방 전 북한교회 총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발간한 『북한교회사』, 노회록, 총회록, 연회록, 대한예수교장로회 사기(史記), 그리고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 최초의 초교파 연합신문이었던 <기독신보> 등이다.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재정이다. 집필료 1억 원은 남북나눔운동이 후원해 3년에 걸쳐 충당할 수 있었지만 사전 발간 비용 1억 원은 아직 대책이 없다. 후원 교회 등 여러 곳에 요청을 하고 있지만 아직 나서는 교회는 없는 실정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최소한 통일에 관심있는 교회들이라고 생각해서 후원 요청을 했는데 ‘좋은 일,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후원을 해주시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북한기독교사전> 집필에는 김흥수 목원대 명예교수가 책임집필을 맡고,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장), 최태욱 박사, 황미숙 박사, 이 책임연구원 등 10여 명이 참여했다. 분단 이전 북한 지역에 있었던 교회와 병원, 학교 등 기독교 기관과 인물이 망라돼 있다. 분량도 꽤 된다. ‘교회’ 부문은 2100개 교회에 A4 1400매(원고지 8000매), ‘인물’ 부문은 2200명에 A4 1700매(원고지 9600매)에 이른다. 그렇다 보니 원래 한 권으로 만들려던 계획도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이 책임연구원은 교회에서 청년부 교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연구소에서, 교회에서 경험한 한국 기독교인, 특히 목회자의 역사의식 부재를 꼬집기도 했다. “강대상에서 가끔 역사 얘기하시는 목회자들도 너무 잘못된 얘기들을 하고, 역사의식이 당신들이 학교 다닐 때인 1970~80년대 에 머물러 계신 것 같다.”

그러면서 이 책임연구원은 “교인이나 청년들에게 조금씩이라도 한국교회사에 대해, 초기 한국교회 믿음의 선배들에 대해 얘기해주면 ‘이게 한국기독교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가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돌아보면서 믿음의 본질을 회복해 나가는 일에 한국교회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북한기독교사전>이 발간될 경우 한국교회의 통일준비에도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이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출판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관심이 없지만 이 사전이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분명히 세상에 나올 거라고 저는 믿는다.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아, 우리가 그동안 막연하게 통일을 준비하고 막연하게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구나’ 하는 각성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사전이 통일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이 책임연구원과의 일문일답.

-<북한기독교사전>이 올해 말까지 나오기로 되어 있는데, 마무리 작업은 어떤가?

통일을 준비하면서 북한 기독교와 관련한 사전 하나가 우리나라에 온전한 게 없다. 우리 연구소가 그 일을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15년 당시 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이시던 홍정길 목사님을 이만열 교수님이 찾아가 집필비 후원 요청을 해서 3년에 걸쳐 총 1억 원을 후원받았다. 2015년 12월에 집필을 시작했기에 원래는 지난해 12월에 집필이 완료되었어야 하는데 막상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교회 연구에 기여한 분 중에 대표적인 분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찬영 목사님이다. 고향이 북쪽이다 보니까 북한 기독교와 관련, 특히 황해도 지역과 관련해 책도 많이 내셨다. 그런 자료를 보다 보니까 사실관계가 틀린 게 꽤 많았다. 주로 고향을 북한에 두셨던 분들의 기록, 기억에 의존해서 써다 보니 크로스체킹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교회를 다 써놓고 그 다음 인물을 쓰고나서 크로스 체킹을 하다 보니까 서로 틀린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다시 세밀하게 크로스체킹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노회록, 총회록, 연회록은 기본이고 장로교, 감리교 등 각 교단의 기초자료들을 다 들여다봤다. 특히 <기독신보>의 경우는 16권을 다 타이핑해서 자료검색을 했을 정도다. 이렇게 1차 자료에 충실하다 보니까 또 자료들끼리 차이가 났다. 제일 큰 문제가 설립연도였다. 예를 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사기(史記)에 나와 있는 교회 설립연도와 총회록에 나와 있는 설립연도가 달랐던 것이다.

이순자 책임연구원이 <북한기독교사전> 가제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1차 자료에서 서로 정보가 다른 경우 어떻게 결정했나?

결국 취사선택이다. 작년 연말부터 그 일을 하고 있는데 크로스체킹하고 논의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9월 말에야 1차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교회’ 부문은 A4로 1400쪽, 원고지 8000매 가량, 항목으로 2100항목에 이른다. ‘인물’은 A4로 1700쪽, 원고지로 9600매, 2200항목이다.

 

-감이 잘 안 와닿는데 만약 사전으로 편찬한다면 이 정도 분량이면 한 권에 다 담긴 힘들지 않겠나?

처음엔 한 권을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한 권이 더 될 것 같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교회 편, 인물 편, 기관 편 따로 할지 아니면 가나다로 해서 다 묶어서 낼 건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한 권 가지고는 안 되고 2~3권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4년을 꼬박 채워서 작업하는 게 과거에도 있었나?

이렇게 장기간에 걸친 것은 없었다. 보통 편찬 작업은 1년 정도 걸려서 한다. 이것 말고 연구소에서 또 하나 작업하고 있는 게 <내한 선교사 사전>이다. 비슷한 툴로 작업하고 있는데 이 역시 지원이 많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다.

 

-사실상 이런 사전 작업은 처음이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 사전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다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이덕주 감신대 교수께서 기독교연구소 소장이셨다. 이 교수님은 예전에 기독교문사에서 <기독교대백과사전>을 만들 때 편찬실장을 하셨다. 그런 점에서 약간의 도움을 제공해 주셨다. 어짜피 편집은 전문기관인 출판사에서 해야 할 거고 저희도 출판 기능이 있지만 편집도 외부에서 해야 할 거다. 그 다음 아직 안 된 게 교회나 인물은 어느 정도 항목수가 나와 있는데 병원, 학교, 기관, 그리고 노회, 그리고 해방 후 북한에서 활동했던 기독교 인물들은 저희가 별도로 인물 편에 넣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9월 말에 완성될 것 같다. 9월 하순 쯤에 집필자 회의를 한번 하려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집필자 회의는 한 달에 한번 하나?

그렇게 못했다. 지방에 계신 분도 있고 해서 그때그때 필요할 때 했다. 물론 초반에는 많이 모였다. 기본 틀을 만들어야 하고 자료를 리서치하면서 사람마다 그 자료를 활용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그것들을 통합하고 의견을 모으기 위해 자주 모였었다. 1년 지나고 나서는 각자 흩어져서 집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필요할 때마다 모였다. 이번 9월 하순 모임은 그래도 어느 정도 집필이 마무리되는 단계이기에 앞으로 프로세스를 어떻게 할지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될 것 같다. 그 다음, 집필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필요한 항목들이 있다. 1차 자료에 의한 것에 비춰 보더라도 교회나 인물의 내용이 좀 다른 게 있는데 그런 경우 어느 자료를 취사선택해서 정리할 것인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작업에 앞으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이런 작업을 거쳐 북한 기독교사에 관심있었던 한국교회사 전문가들에게 저희가 윤독하는 시간을 갖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9월 말까지도 어려울 것 같은데?

9월 말까지는 못할 것이다. 자문위원 선정을 누구로 하고 그 분들 작업이 또 2~3개월은 걸린다고 봐야 하니까. 그걸 보고 나서 또 취합하고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빨라야 올 12월 정도부터 편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발간은 내년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물 편에서는 남한 입장에서 봤을 때는 살짝 민감한 분들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해방 이후 북한정권에 동조한 인물도 있을텐데?

그런 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기준은 세웠다. 인물은 북한에서 태어나신 분, 활동지역이 북한이었던 분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활동을 남한에서 하신 분들은 제외했다. 아예 초반기에 내려오셔서 고향은 북한이지만 초중학교를 남한에서 다니신 이런 분들은 배제했다. 남한에서 태어났어도 주로 활동을 북한에서 하신 분들은 포함했다.

 

-여러 교회에 후원 요청을 했는데 다들 ‘좋은 일이다’ 하면서도 후원을 안하시는 건 이게 남한교회사가 아니고 북한교회사이기 때문에 괜한 오해 받는 게 싫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저희가 주로 후원 요청을 드리는 교회는 연구소를 후원하는 교회들, 적어도 통일에 관심있는 교회들이다. 목사님들 같은 경우는 이 책의 필요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후원 요청을 했는데 지금까지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라고 얘기하는 분들은 한 분도 없었다. ‘좋은 일들 하시네요.’ 대체로 이런 반응들이셨다. 그런데 막상 이 일을 위해 후원해 달라고 하면 꺼리시는 것 같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아예 후원구좌를 만들어서 후원을 받는 건데 여러 가지로 쉽지는 않다. 그래서 고민만 하고 있다.

 

-딱 방법이 없는 건가?

그래서 아시는 분들, 그동안 연구소를 후원하셨거나 이런 쪽에 관심있는 분들을 찾아가 후원을 요청하고는 있는데 쉽지 않다. 기독교계가 연합사역이 어려운 것 같다. 좀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아닌가. 그래서 연초에 교계 언론, 방송마다 엄청 인터뷰 많이 했다. 하루에 연구소로 찾아와 서너 군데 언론사와 인터뷰 했었다. 한국교회나 언론이 이런 일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았다. 연구소가 올해 2월에 낸 책이 『3.1운동과 기독교 민족대표 16인』이란 책이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16인이 기독교인이다. 그동안 이 16인을 하나로 묶은 책이 한 권도 없었다. 33인이 다 들어간 책은 있었지만.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월 1일에 그 책을 냈다. 또 하나가 <3.1 독립운동과 기독교>라는 자료집을 냈다. 그 자료집은 신문에 나와 있는 기독교 관련 3.1운동 기사, 기독교인 중 3.1운동 하다가 재판 받은 기록을 번역해 냈다. 세 번째는 <선교사들이 바라본 3.1운동> 이란 자료집이다. 이렇게 3권으로 기획해서 발간했다. 몇 년 전부터 기획한 건데 2월 말에 책을 내려고 교회들마다 펀드를 요청했다. 가장 대표적인 교회가 16인이 소속된 교회들이다. 그런데 한 군데도 펀드를 해주지 않았다.

 

-이유는?

그냥 ‘좋은 일 하시네요’ 그거였다. ‘저희가 찾아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도 한 군데도 오라고 하는 교회가 없었다. 딱 한 교회가 오라고 했는데 저희가 이사장, 소장, 그리고 제가 가서 브리핑을 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했는데 연락이 안 왔다. 『3.1운동과 기독교 민족대표 16인』이 나오게 된 것도 예장고신의 퇴임목사 모임인 미래교회포럼에서 십시일반으로 발간비 2000만원을 후원해 주셔서 가능했다. 자료집은 3년 프로젝트로 온누리교회에서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1편 밖에 못냈다. <북한기독교사전>도 똑같다. 다들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막상 목사님들이 이건 분명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교인들에게 설명도 하고 장로들에게 간청도 해서 펀드를 하실 수 있는데 목사님들이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표시가 안나는 일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한국교회 역사의식 부재의 단편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연구소에서 25년 동안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교회사를 아시는 목사님들이 많이 안계시기 때문에 강대상에서 가끔 역사 얘기하시는 분들도 너무 잘못된 얘기들, 그리고 당신이 학교 다닐 때인 1970년대나 80년대 초반, 즉 그 당시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역사인식 거기에 머물러 계시다. 그러니까 통일? 해야지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별로 그렇게 와닿지 않는 거다. 북한? 별로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막연하게 ‘북한동포를 위해 기도한다’라고 하는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이나 실천에는 굉장히 인색하다. 이런 것들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동안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발간한 단행본과 자료집. ⓒ유코리아뉴스

-이런 게 잘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목회자의 무관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라고 보시는지?

너무 자기 교회 중심의 의식들이 한국교회는 굉장히 강한 것 같다. 시대나 민족이나 국가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는 게 굉장히 떨어지는 것 같다. 흔히 목사님들은 3.1운동 하면 기독교인들이 굉장히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안다. 3.1운동 때 수감된 여성들 가운데는 70%는 기독교인이었고 3.1운동에 참여한 28%는 기독교인이었고 이렇게 얘기하면서 완전히 기독교가 3.1운동을 다 한 것으로 얘기하지 않나. 당시 우리나라 식민지 때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정치 참여였다. 그 때문에 선교사들도 참여를 하지 않은 거였다. 그러면서 3.1운동은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하면서 지금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나 어려움이나 폐단에 대해 한국교회는 침묵하고 있지 않나. 정교분리라는 똑같은 원칙을 내걸면서 3.1운동은 자랑스런 역사라고 하면서 지금 현실 사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 아니면 현실참여를 왜곡해서 참여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잣대가 다른 것 아닌가. 그 원인이 뭘까. 저는 목회자의 역사의식 부재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도들은 그 방향대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 목회자가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성도들이 시대적 과제에 대해 어떤 역사의식을 갖느냐 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회자가 바른 역사의식이 없거나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역사의식 자체가 부재하거나 한다면 교인들도 그저 ‘예수님 잘 믿고 천국가면 된다’라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소의 역할은 뭔가?

연구소에서는 후원 교회에 1년에 한번 보고서를 제출한다. 어떤 교회는 5년 단위로 후원단체를 바꾸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경우는 괜찮은데 어느날 갑자기 소관 부처가 바뀌었다고 하면서 ‘여기는 연구기관인데 연구자들이 자기 돈 내면서 하면 되지 이게 무슨 선교냐?’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연구소가 아니고 선교회라면 후원받는 데 수월할 것 같다. 그런데 연구소가 연구하는 데 왜 교회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연구소는 초교파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장로교, 감리교에 소속된 연구소가 아니고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얘기하려고 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초창기부터 우린 이 마인드를 가지고 연구소를 운영해 왔다. 우린 나름 이것이 문서선교라고 생각해서 해왔는데 교인들이 그런 인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선교의 패러다임이 다양한데 그냥 선교사 파송해서 그 지역에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고 하는 것만 선교지, 그 나머지 영향력에 대해서는 교인들이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 저도 청년부 교사를 하고 있는데 청년들이 한국교회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러면 성경이라도 제대로 아느냐? 성경은 더 모른다. 조금씩이라도 한국교회사에 대해 얘기해 주고 초기 한국교회의 믿음의 선배들 얘기를 해주고, 선교사들의 헌신에 대해 얘기를 해주면 ‘아 이게 먼나라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라 이게 정말 한국기독교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돌아보면서 믿음의 본질들을 회복해 나가는 일에 한국교회사가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발간한 단행본, 자료집은 몇 권 정도인가?

단행본은 140권 정도다. 거기엔 자료집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교회 통사> 시리즈가 있고, 오랫동안 답사를 하면서 쓴 <기독교유적>이란 책이 있다. 한국 편, 일본 편이 있다. 지금 중국 편을 준비 중이다. <연구총서>를 지금까지 29권 냈다. <자료총서>는 50권 넘는다. 번역총서, 인물총서, 논문선집 등 총 140권 정도다. 연구소 산하에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있다. 학회에서 <한국기독교와 역사>라고 하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지가 51권이 나와 있다. 합치면 단행본으로 200권 정도 낸 것이다.

 

-예전에 김흥수 교수님께서 『북한교회사』를 정리하고 나서 북한에 갔던 얘기를 들려주셨었다. ‘왜 북한인민들은 독자로 생각하지 않았냐?’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하셨다. 이번 <북한기독교사전>은 자료수집이나 집필과정에서 북한 사람들과 협력하거나 참여했거나 혹시 이후라도 그런 계획은 없는가?

연구소가 이 책을 기획할 때는 교회주소를 옛주소와 지금 주소로 비교해서 내고 싶었다. 그러면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통일이 되면 ‘여기가 기독교병원 있었던 곳이네’ 이렇게 알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동안 워낙 많은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그걸 바로 찾기가 쉽지 않은데 유관지 목사님이 관여하시는 어떤 기관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렇게 하는 데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일단 원자료에 충실하게 해서 사전은 내고 이것들을 가지고 이 중에서 중요한 교회들을 뽑아서 현재 주소에 맞춰 지도라도 만들거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북한기독교사전>이 갖는 의미를 말씀해 주신다면?

두 가지 정도로 축약해 말씀드리고 싶다. 한 가지는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는 사실 북한 아닌가. 남쪽에서보다 북쪽 만주를 통해서 기독교가 들어왔다. 한국교회의 예루살렘 같은 곳은 평양이기도 하고 원산이기도 하고 의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성경에 ‘원래 신앙이 어디에서부터 떨어졌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신앙의 본류를 찾는 데 있어서 북한기독교사전은 의미가 클 거라 생각한다. 마치 우리는 선교사들이 일본을 통해 들어와서 교회가 이렇게 번창한 걸로 알고 있고, 만주 기독교와 관련된 부분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북한기독교사전이 갖는 의미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사전을 통해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을 촉발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집필하는 과정, 출판하는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관심이 없지만 이 사전이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모아져서 분명히 나올 거라고 저는 믿는다. 발간이 되고 나면 사전이 갖는 한국교회에 대한 영향력은 클 거라 생각하다. ‘아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여기에 있었구나. 우리가 막연하게 통일을 준비하고 막연하게 북한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사전을 보면서 통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겠구나’ 하는 각성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이 사전이 담았으면 좋겠다. 통일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한국교회의 뿌리가 북한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오해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우려는 없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자료에 충실하려고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사기’라든가 총회록, 노회록, 연회록 그 다음에 평양지경사기, 기독교요람 이런 것들을 충실히 살폈다. 초창기 당시를 가지고 교회를 집필했기에 공격받을 일이 없다. 옛날 역사를 찾아놓은 거니까. 우리가 그 교회를 세운 것도 아니고 만든 것도 아니고, 공격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구 결과를 통해 한국교회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건 우리 연구소의 큰 사명이기도 하다. 이러 저렇게 볼 수 있는데 가장 중립적인 건 자료에 근거해서 이렇습니다, 라고 방향을 제시해주다 보면 이쪽에서도 배척받고 저쪽에서도 배척 받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명은 자료에 근거해서 역사적, 객관적인 사실들을 한국교회에 알리는 일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우로 치우쳤거나 좌로 치우쳤다면 그걸 바로잡아가는 게 우리 연구소의 역할이기 때문에 가능한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연구소가 어느 특정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라 초교파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유다.

 

-사전 보급계획은?

아직 보급계획은 없다. 1000권 정도 발간할 계획이다. 교단별로 홍보도 하고, 후원 교회들에 안내문도 내보내서 판매 독려도 하고, 교계 신문에도 홍보를 하려고 한다. <3.1 독립운동과 기독교> 자료집도 할인도 해주고 각 기관마다 홍보도 하고 인터뷰 때마다 얘기했는데도 구입을 안하시는 거였다. 그래서 걱정이긴 하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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