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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고 어디에 길이 있갔어? 이제는 북조선도 남조선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北 정치장교 출신 창조교회 심주일 목사 인터뷰

   
▲ 북한 정치장교 출신인 부천 창조교회 심주일 목사가 유코리아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김성원 기자

경기도 부천 창조교회 심주일(61) 목사. 그는 1998년 3월 탈북했다. 정치장교* 중좌(중령)의 신분이었다. 김정일 체제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제주극동방송의 설교와 친구로부터 건네받은 성경을 읽고 탈북을 감행했다.

당시 차가운 압록강 물살을 가르던 그는 굳은 결심을 했다. ‘나는 이제 인민공화국 지도자와는 결별이다. 그러나 절대 인민들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이 건넜던 강을 나중에 반드시 다시 건너서 북한 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1년간의 중국 체류는 그에게 영화 속 장면들과 같았다. 지나가던 승용차가 그의 앞에 서더니 수백리나 떨어진 지린성의 한 교회에 내려줬다. 이튿날부터 중국인이 운영하는 양계장에서 근무했다. 심 목사에게 배당된 닭은 정확하게 1782마리. 동료 중국인들의 닭은 병들어 죽어가기 일쑤였지만 심 목사가 맡은 닭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한 마리 한 마리 기도하며 지극정성으로 닭을 길렀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 당시 양계장에서 일할 때가 내 신앙의 최절정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는 98년 10월, 간절한 기도이자 소원이던 대한민국 땅에 발을 디뎠다. 그냥 디딘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띄운 특별전세기 편에 국정원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입국했다. 그토록 상상했던 한국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그는 최근 유코리아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피력했다. 우선 그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이랬다.

"남한 교회는 다 천국인 줄 알았는데..."

“남한 교회는 다 천국인 줄 알았더랬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어. 어드렇게 목사가 설교 요청 수락하기 전에 사례비 얼마 줄 건지를 따질 수 있는가. 그 얘길 들으며 가슴이 찢어졌어.” 밤을 지새다시피 하며 이불속에서 라디오로 들었던 남한 교회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그는 여전히 평안도 사투리 그대로다. 군인 출신답게 말투도 직설적이다.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가 북한에서 정치장교로 있을 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투쟁의 노래’로 이화여대 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스커트치마로 시위대에게 돌을 나를 정도로 헌신적인 민주화운동의 투사다.

남한에 온 뒤 이대에서 강의 초청이 왔다. 이대생들은 모두 ‘투쟁의 노래’의 주인공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같은 기대는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초롱초롱할 것 같은 학생들의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지.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의미있는 곳을 가겠다는 학생은 보이질 않았어. 그때 깨달은 게 ‘투쟁의 노래’는 모두 거짓이구나 하는 거였지.”

정치권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남한의 정치인들은 얼굴에 철판을 깐 것 같아. 오늘은 당당히 살다가 내일이면 감옥가고, 그리고 또 얼마 안 있어 얼굴을 들이밀고…. 그런 정치인들을 허용하는 법이 무슨 법인가. 누더기지.”

   
▲ 유코리아뉴스를 찾은 부천 창조교회 심주일 목사. 김성원 기자

"나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하나님 절대주의 신봉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도 자본주의자도 아니야. 오직 하나님 절대주의 신봉자일 뿐이지.”

무엇보다 그는 남한 내 탈북자들에 대해 호된 비판을 쏟아냈다. “가끔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지. 다들 남한에 대해서 듣고 알고 온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 탈북자들은 스스로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땅(남한)에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돼.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정착을 잘 해야지 그게 결국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고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지.”

심 목사는 장신대 신대원에서 공부한 뒤 2005년 목사 안수를 받고 2006년 부천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20~30명의 교인들은 대부분 남한 사람들이다. 식당에서 만난 오토바이 퀵서비스 노동자가 계기가 돼 퀵 서비스 노동자들이 많이 출석하고 있다. 심 목사의 바람은 올해는 미자립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탈북할 때의 그 간절한 기도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든지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북한 인민들은 지금 김일성도 죽고 김정일도 죽고 구원의 길이 없는 막막한 상태야. 김일성 주체사상도, 그 사상을 체화한 노동당 정책도 모두 성경에서 끌어온 것인데, 이제는 제발 북한이 성경으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지. 북한이 앞으로 갈 길은 하나님밖에 없어. 시작과 끝이 하나님인데 어디루 갈 길이 있갔어?”

심주일 목사의 상세한 탈북 과정은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에 나와 있습니다. 유코리아뉴스는 심 목사와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심 목사의 성장 과정, 북한체제에 대한 회의, 복음을 접한 계기, 탈북 과정 등에 대해 1월 19일부터 연재할 예정입니다.

*정치장교: 정치지도원이라고도 한다. 일반 군대 보직과 달리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의 군대에서 정치적 임무를 담당하는 보직을 뜻한다. 북한의 경우 정치장교는 군대보다는 노동당의 지도를 받는다. 당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정치장교는 다른 군대 보직보다 우월한 보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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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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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1-18 11:36:57

    기다리던 기사가 마침내 나왔군요.
    UKoreaNews 역시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의 희망임을
    알리는 좋은소식을 알리는 자의 발이 될 수 있길!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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