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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셈법과 남북관계 ‘새판 짜기’의 모색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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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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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의 속내

지난 10월 23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시설을 현지 지도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라”는 다소 충격적인 지시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사업을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평가하고 우회적인 비판도 숨기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관계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으며, 김 위원장의 지시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 현대그룹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일각에서 국제적 규범과 가장 중요한 신뢰를 저버리는 북한의 ‘나쁜 습관’이 재연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몇 가지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금강산을 북한이 주도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 것이며, 연후에 남녘 동포들의 관광을 환영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언급대로 세계적인 명소에 해당하는 금강산 관광에 대해 현대는 독점권을 확보했지만 지난 10년간 사업은 중단되었으며, 북한이 의도했던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시설들이 방치되어 노후화를 피할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이 역점을 두고 건설 중인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에는 16개의 호텔과 28개의 콘도미니엄 단지, 그리고 방갈로와 캠핑장 등 세계적인 규모의 관광단지가 개발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작금의 금강산 관광 시설의 현실은 초라할 지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자료를 통해 원산지구, 마식령스키장지구, 울림폭포지구, 석왕사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 등 6개 권역을 포함하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에 대한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마식령-원산-금강산을 연계하는 국제적인 관광지구의 조성이 김 위원장의 구상이다.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시점에 금강산 지구의 대규모 개발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금년 1월 신년사에서 금강산관광사업의 조건 없는 재개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으며,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원산-금강산 지구 이외에도 삼지연과 양덕 온천 지구 개발 등 김 위원장의 경제정책에서 관광사업은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북한의 경제 현실에서 단기간에 안정적인 외화 확보가 가능한 사업은 사실상 관광사업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금강산 발언을 단순히 남북관계에 대한 불만과 위협으로만 볼 일이 아니며, ‘김정은 식 남북경협 새판 짜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조문과 초대형 방사포 발사의 의도

10월 30일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에 친필 조의문을 전달했다. 북한이 한국의 주요 인사의 장례에 조문을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냉랭한 남북관계의 현실에 비추어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로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매체들은 이름만 적시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문 대통령을 지칭해 국제외교의 관례는 물론 상식을 넘는 험담을 쏟아 낸 터다.

반면 조문 바로 다음날인 31일에 북한은 올해 세 번째로 두 발의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했다. 이를 두고 북한의 대남압박 양동작전이라거나 남북관계에 대해 미련이 없다는 경고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의 추가 발사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지난 9월 10일 북한군은 김 위원장 참관 하에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했지만 한 발은 내륙에 낙하함으로써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사간격도 19분으로 다연장로켓 무기의 특징인 신속성도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연속발사를 위한 추가적인 시험의 필요성을 직접 지시한 바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통상 탄도미사일과 다연장로켓포(방사포)는 실전배치 이전에 신뢰성 검증을 위해서 10발 이상의 시험사격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번으로 세 번째 발사된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는 아직도 개발단계로 볼 수 있다. 통상 미사일과 다연장로켓의 시험발사를 위해서는 몇 주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 조문에 이어 바로 초대형 방사포의 시험발사를 기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은 한·미의 연합 군사훈련과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우리가 도입중인 F-35 스텔스 전투기의 경우 북한의 능력으로 요격은 물론 탐지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려움의 대상이다. 금년 5월부터 시험발사가 시작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의 경우 우리 안보에 위협요인이지만 엄밀히 보면 첨단 무기체계라고 할 수 없다. 7월 23일 김 위원장의 현지시찰로 공개된 잠수함의 경우 최대 세 발의 SLBM 탑재가 가능한 구 소련의 구형 골프급 내지는 파생형으로 추정된다.

우리 해군의 경우 수중 배수량 3,705t으로 여섯 발의 SLBM 탑재가 가능한 장보고-Ⅲ형 잠수함, 즉 안창호급이 이미 지난해 9월 진수되어 시운전 중이며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안창호급은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2-3일에 한번 부상해야 하는 북한의 잠수함과 달리 2주간 장기 잠항이 가능하다.

연이은 북한의 발사체에 안보적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을 뿐 우리 역시 미사일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김 위원장의 조문과 초대형 방사포 발사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즉, ‘조문에도 불구하고’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했다기보다는, ‘냉랭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조문을 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연말 셈법’ 자가당착과 ‘새로운 길’ 딜레마

시계바늘이 올해 말로 향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협상시한을 금년 말로 공언했지만, 그 부메랑으로 인해 오히려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복합적인 이슈를 다루는 국제협상국면에서 양측의 합의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협상시한을 선포할 경우 스스로 시간에 쫓기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김 위원장이 소위 ‘연말 셈법’의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 이어 김영철 부위원장까지 나서 강온의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모두 미국에게 연말 이전에 해법을 찾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보다 큰 문제는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 딜레마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주요 인사와 매체들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언급을 반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핵 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기고 있다. 그러나 핵 실험과 ICBM 시험발사는 새로운 길이 아닌 북한이 이미 장기간 반복해온 ‘옛 길’에 불과하다. 북한이 ‘옛 길’을 선택할 경우 직면할 미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북한이 ‘옛 길’을 선택한다면 대북제재의 강화와 군사적 압박의 재개는 자명하며, 미·중 무역전쟁이 버거운 중국으로부터의 지원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미국은 대선 레이스에 접어들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된 상태다. 미국 정치의 특성상 대선 국면에서는 외교안보문제보다는 국내문제가 우선이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세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을 덮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결정적인 것은 노벨 평화상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였다. 북한이 ‘옛 길’을 선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양보가 아닌 강력한 군사적 대응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정치의 특성이다.

 

남북관계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다

선미후남(先美後南)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전략과 탄핵 정국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을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올해 말을 성과 없이 보낼 경우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 딜레마는 깊어질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 경쟁에 들어가는 대선에 집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장기 표류할 개연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초석이었으며,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영변 핵단지 영구폐기 의사를 이끌어 냄으로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했다. 올해 6월 30일 역사적인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도 서울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성사된 것이다. 10월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직전에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성된 당면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에는 고단한 우리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의 대남 비난에서 ‘남북관계의 단절’에 방점을 찍어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고 민족공조에 입각해 신속하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에 주목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선택한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의 관철을 위해서는 남북협력이 필수이며, 그토록 ‘잘 꾸리고’ 있는 대규모의 관광단지도 우리 관광객이 없이는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북한이 현대 자산을 일방적으로 압수하고, 철거한다면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장려하기도 어렵거니와 국제자본의 신용도 크게 잃게 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에서 대북제재의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북한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가 북한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창의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5.24조치 중 우리 국민의 방북불허,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그리고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은 현 상황에서도 해제가 가능하다. 금강산 관광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의구도를 형성하는 동시에 개별관광 등 새로운 협력방식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구상과 현대그룹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현대그룹의 자본과 관광사업 노하우를 결합할 경우 오히려 김 위원장의 구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특사와 추가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도 마다할 일이 아니다. 올해 말까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다시 2017년의 위기국면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어수선한 국내정치에 휘둘릴 일이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될 일이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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