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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DM은 무엇일까?

1990년 봄, 동서독 간 통화·경제·사회통합을 위한 협상에서 서독 측 대표였던 티트마이어(Hans Tietmeyer)는 동독에서도 서독마르크화(도이치마르크, Deutsche Mark, DM)를 사용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동독 협상단의 한 인사에게 물었다.

1990년 5월 18일 서독의 재무부 장관인 테오 바이겔(오른쪽)과 동독의 재무부 장관인 발터 롬베르크(왼쪽)가 화폐, 경제, 사회통합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독일연방사진보관소.

대답은 뜻밖에도 헝가리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왜 서유럽의 파리나 로마가 아닌, 공산권 시절에도 갈 수 있던 곳에 가려 하느냐고 묻자 “이제 DM을 들고 가서 일등 국민 대접을 받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구권 국가 식당에서라도 동독마르크화를 내면 서독마르크화를 내는 서독인에 비해 대접이 썩 좋지 않아 이등 국민이라는 자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한 동독 라이프치히 출신 기자는 분단 시절 동독에서 서독마르크화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사를 썼다.

“학생시절이었던 1970~80년대에 서독마르크화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DM을 가지고 서독의 브랜드가 찍힌 블루진, 티셔츠, 스티커, 만년필을 살 수 있었던 그룹과 그렇지 못해 동독의 소매상에서 파는 매력 없는 물건들만을 가질 수 있는 그룹으로 나뉘었다. 서독마르크화는 서독에 사는 친척들로부터 받거나 혹은 암시장에서 아주 비싼 환율로 바꾸어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도저도 안 되는 이들은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페어(fair)를 방문한 서독인들이 주는 팁을 모으기도 했다. 5DM 동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서독인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 돈을 가지고, 원래는 외국인들에게만 개방되었다가 외화 부족으로 내국인에게도 개방된 외화상점 인터숍에서 커피, 향수, 서독 브랜드의 운동화, 기계 등 선망하는 물건들을 살 수 있었다.” (당시 기사 발췌)

도이치마르크화는 서독인들에게는 전후 부흥의 상징이자 정체성의 하나였고, 동독 주민들에게는 동독에서 향유하지 못했던 자유와 번영을 상징하는 가시적인 대상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동독주민들이 서독으로 대량 이주하면서 큰 문제가 되던 시기에 ‘DM이 (동독으로) 오지 않으면 여기 머물러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서독으로) 간다’라는 동독에서의 시위 구호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독 주민들은 이 DM을 갖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것이 통화통합에 이어 통일로 가는 발판이 되었다.

통화통합으로 서독마르크를 처음으로 교환해준 1990년 7월 1일 독일 언론들은 이날을 ‘희망의 날’, ‘연중에 느끼는 제야 축제의 분위기’ 등의 제목을 뽑았다. 동독 주민들은 새로운 통화와 함께 모든 것이 동독 시절과는 달라지고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DM은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물건을 사고, 외국에서 대접을 받는다’는 돈으로서 만의 의미를 넘어 서독주민과 같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하나의 상징물이었던 셈이다.

북한 장마당 모습. 북한에서는 2009년 시행된 몰수적 화폐개혁과 이어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고 미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가 저축수단이나 주요 교환수단이 되었다. 자료사진.

북한에서는 2009년 시행된 몰수적 화폐개혁과 이어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북한원화(KPW)로 모아놓았던 저축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다.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고 미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가 저축수단이나 주요 교환수단이 되는 외화통용현상(달러라이제이션)이 확산되었다.

이에 대응한 북한 당국의 외화 흡수정책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도 외화를 가지고 외화상점에 가면 북한 주민들도 일반 상점에서는 살 수 없는 물건들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한국원화(KRW)와 한국 상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치·외교적으로 남북한 관계가 얼어붙어 있을수록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동경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2002년 1월부터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도이치마르크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해 8월에 프랑크푸르트 인근에서 티트마이어 전 총재와 점심 식사를 함께 했을 때 85세 노구에도 통화통합 당시를 회고하는 그에게는 힘이 있었다. 그 연말에 부음을 들었고 독일의 모든 언론이 그를 추모했다. DM이 사라지고, 통합·통일의 주역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아직도 독일에서 DM은 동서독 주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마치 향수처럼 기억하는 대상이다.

얼마 전 책을 내면서 「독일통일 과정에서 독일마르크화, 독일연방은행의 역할」이라고 길고 건조한 제목을 단 것도 통일과정에서 이 DM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우리가 가진 것 중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북한 주민들도 동경할만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가야 하나?

김영찬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초청연구위원

* 이 칼럼은 (사)남북물류포럼이 제공했습니다. (남북물류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김영찬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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